[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 내부자고발 보도와 인권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4분


코멘트
김일수 위원거명 인사 인권존중을
김일수 위원
거명 인사 인권존중을
황도수 위원의인-죄인 가르지 말길
황도수 위원
의인-죄인 가르지 말길
윤영철 위원문건 철저히 검증해야
윤영철 위원
문건 철저히 검증해야
양우진 위원선입견 심어주면 안돼
양우진 위원
선입견 심어주면 안돼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을 통해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언론의 보도 태도를 놓고 여러 얘기가 나온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1일 본사 회의실에서 ‘내부자고발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양우진(영상의학과 전문의)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한발 늦더라도 사실확인 후 보도를

―김 변호사의 폭로와 관련한 최근의 언론 보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일수 위원장=내부자고발이란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행동이지요. 하지만 개인적 이익을 위해 상대를 협박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터뜨린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언론 보도가 폭로 자체에만 집중된다면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윤리와 신뢰성을 떨어뜨려 상실감을 안겨 줄 우려가 큽니다. 자칫 비밀의 폭로가 곧 ‘선(善)’이라고 받아들여져 나머지는 매도된다면 사회 교육적인 균형마저 잃게 되겠지요.

▽윤영철 위원=내부고발자를 신뢰할 수 없으면 아무리 중대한 의혹 제기라도 의도적 흠집 내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불법 취득된 문건이나 검증되지 않은 명단이 무차별적으로 폭로되고, 언론이 중계하듯 곧바로 쏟아내는 보도 방식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부고발자의 폭로는 신속한 보도보다는 철저한 검증과 확인을 거쳐 신중하게 보도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황도수 위원=의인(義人)과 죄인(罪人)을 오가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양쪽 모두 정의의 편에 선 듯한 극단적인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김 변호사 스스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사제단의 폭로를 받아서 쓴 언론 역시 동일한 책임을 진다는 가정 아래 보도했다고 봐야겠지요. 법적으로 명예훼손에 해당하니 고소·고발에 따른 법적 절차가 마무리된 후 보도하는 편이 신중하겠지만 거대 기업 삼성이 관련된 만큼 시의성도 무시할 수만은 없겠지요.

▽양우진 위원=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돈 문제를 비롯해 부인과 노래방 등 김 변호사 주변의 잡다한 얘기들을 보도한 것도 문제입니다. 폭로자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선입견을 심어 주는 듯한 의도가 엿보였거든요. 언론마다 성향 차이에 따라 균형감각을 상실한 보도가 쏟아져 ‘거대한 편 가르기’의 분위기도 느껴졌습니다.

―인권 침해 지적도 많은데요.

▽김 위원장=폭로자가 전권(全權)을 휘두르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거명된 인사는 제대로 자기변호의 기회도 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인권 침해의 소지가 심각하다는 판단입니다.

▽황 위원=사안의 특성상 독자들로서는 터져 나온 폭로에만 관심이 갈 뿐 반론이나 해명은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으리라 짐작됩니다. “증거를 갖고 있다”는 건 말뿐이고 실제로 증거는 없이 오로지 주장만 있었지요. 만약 허위 폭로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침해된 인권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만다는 점이 걱정됩니다.

▽윤 위원=뜨거운 이슈라는 판단에서 성급하게 보도한 탓에 검증도 없이 주장과 해석을 뒤섞어 무책임하게 보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주변적인 내용을 보도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는 지적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삼성이 운영하는 골프장을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총장 내정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는 보도도 그중 하나입니다.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독자들은 당연히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받아들이게끔 상상력을 부추겼다고 봅니다.

―내부자고발 보도의 바람직한 방향은….

▽김 위원장=내부자고발은 진정성을 기준으로 구분해 다뤄야 합니다. 진정성이 있을 때 용기 있는 의인의 행동으로 사회정의에 기여할 수 있겠지만 사적으로 취득한 비밀을 감춰 두었다가 자기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 든다면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범죄자가 됩니다. 의인과 범죄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자면 언론의 균형 잡힌 시각이 요구됩니다. 언론이 어떤 의도를 가진 폭로자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한 템포 늦게 가더라도 철저하게 확인해 보도해야 합니다.

▽양 위원=나중에 가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질 경우 침해된 인권과 피해를 원상회복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식 끝내기가 아니라 오해를 불식하고 선입견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윤 위원=이번 사건의 경우 김 변호사 스스로 나서지 않고 왜 사제단을 통해 폭로했는지 구조를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위험을 느껴서 그랬는지, 아니면 도덕적 문제를 희석하려고 사제단을 동원한 것은 아닌지 등 점검해 볼 대목이 많습니다. 맥락을 짚어가며 독자의 판단에 도움 되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