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서울 외곽주봉 220km완주 윤왕용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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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은 그윽하고 담담하다. 웅숭깊다.

봄 산에 오를 때 풍선처럼 붕 떠올랐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여름 산의 축축한 느낌이나 겨울 산의 쩌렁쩌렁한 기운도 없다. 맑은 바람이 쏴아∼ 나뭇가지를 흔든다.

우수수 떨어지는 마른 잎들. 골짜기는 이미 묵언정진 채비다.

어쩌다 짜그락짜그락 조약돌 뒤척이는 소리만 들린다.

숲은 꽉 찬 속을 조금씩 비우고 있다. 몸에서 느끼한 기름기를 빼고 있다.

새들이 포르르 허공을 날아 어디론가 사라진다. 작은 짐승들은 종종걸음으로 가을걷이에 바쁘다.

왜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가? 히말라야 셰르파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산에 오른다.

먹고살기 위해 외국 등반대의 짐을 등에 지고 산에 오른다.

그렇다면 외국 등반대들은 왜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에 오르는가.

그들도 셰르파들처럼 먹고사는 데 절박한 것인가? 셰르파족들은 못내 그것이 궁금하다.

어느 셰르파는 “이 의문에 대해 거의 50여 년 동안이나 생각해 봤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어처구니없는 짓에 밥줄을 매고 있는 우리는 또 뭐란 말인가?’라고 자문한다.》

○ 풀코스 59회 완주한 서브스리 마라토너

윤왕용(47) 씨는 산에서 논다. 키 173cm, 몸무게 61∼65kg. 바람이 건듯 불면 산으로 간다. 몇날 며칠씩 잠을 안 자고 산을 탄다. 산은 그를 보고 웃고, 그는 산을 보고 웃는다. 그와 산은 말이 필요 없다.

한강 위쪽 강북에는 소위 ‘불수사도북’ 코스가 있다. 불암산(507.7m)∼수락산(637.7m)∼사패산(552m)∼도봉산(740m)∼북한산(836.5m) 종주가 바로 그것이다. 윤 씨는 이 코스를 한 번 종주(8시간 58분 36초)도 성에 안 차 아예 왕복(20시간 54분 42초)까지 해 버렸다. 그뿐인가. 서울을 빙 두르고 있는 220km 산줄기(지도상 180km)를 55시간 24분 12초에 돌았다. 물론 여기엔 한강 남쪽 5개 산(삼관우청광) ‘삼성산(478m)∼관악산(632m)∼우면산(293m)∼청계산(618m)∼광교산(582m)’도 포함된다. 산만 26개. 봉우리로 치면 그보다 훨씬 많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쉬지 않고 능선을 걸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대부분 걸으며 해결했다. 배낭 무게 20∼15kg. 윤 씨는 산줄기가 중간에 끊기는 성남, 서울 독산동, 북악스카이웨이, 의정부 등 4곳에서 밥을 사 먹었고 나머진 비상식량으로 해결했다.

출발지점은 경기 하남의 바깥창모루 옆 팔당대교. 첫 봉우리 ①검단산(하남)을 거쳐 시계 방향으로 ②용마산→③청량산→④성남 검단산→⑤영장산(맹산)→⑥불곡산→(탄천→오리역→용인수지)→⑦광교산→⑧백운산→⑨바라산→⑩청계산→⑪인릉산→⑫대모산→⑬구룡산→⑭우면산→⑮관악산→○16삼성산→(독산역→안양천변→성산대교→연희동)→○17안산→○18인왕산→○19북악산(팔각정)→(북한산 보현봉)→○20북한산 백운대→(위문→도선사→우이동→우이암)→○21도봉산 자운봉→(포대능선→사패능선)→○22사패산→○23수락산→○24불암산→(삼육대)→○25구릉산(동구릉 뒷산)→(망우리 고개→용마봉)→○26아차산→광나루에 도착했다. 오전 7시에 출발, 도착은 사흘째 오후.

서울 순환 산줄기 코스는 윤 씨가 치밀한 답사 끝에 만들었다. 흠이라면 강북 중랑천, 강남 탄천 양재천 안양천에서 산줄기가 끊긴다는 점이다. 윤 씨는 강북과 강남 산줄기를 지금보다 더 바깥쪽으로 도는 코스를 궁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강은 어쩔 수 없지만 4개 천은 건너지 않아도 된다. 물론 길이가 현재 코스보다 길어져 330km나 된다.

윤 씨는 풀코스 59회 완주의 서브스리(2시간 54분 27초)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울트라대회 참가도 수십 번이 넘는다. 100km 최고기록은 7시간 16분. 올 3월 제주 200km 울트라대회에선 22시간 13분 40초로 1위를 차지했다. 요즘 일반 마라톤대회에선 주로 페이스메이커나 장애인과 함께 달리기 등 봉사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100∼200km를 달리고 나면 2∼3일 동안 온몸이 뻐근하다. 하지만 산길은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걸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가뿐하다. 자연의 치유력이 경이롭다. 서울 강북의 산들은 바위산들이라 기운이 강하고, 강남의 산들은 흙산이라 부드럽다. 바위산은 바위산대로, 흙산은 흙산대로 다 좋다. 손바닥에 닿는 바위의 꺼끌꺼끌한 감촉이나 발바닥에 전해 오는 흙의 부드러운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윤 씨의 가장 긴 무박산행은 S자 모양의 지리산 태극능선(덕산∼수양산∼웅석봉∼지리산 동부능선∼천왕봉∼노고단∼성삼재∼지리산 서부능선∼덕두봉∼인월) 90.5km를 왕복한 것. 79시간 15분 동안 눈 한번 붙이지 않고 걸었다.

○ 산 오르기는 야구와 같다

산에 오르는 것은 야구와도 같다. 야구는 누구나 홈을 떠나 1, 2, 3루를 거쳐 다시 홈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바퀴 돌아와 밟은 홈은 처음 떠날 때의 홈과 전혀 다르다. 등산은 하나의 이등변 삼각형을 그리는 행위이다. 오르는 한 선과 내려가는 한 선을 두 변으로 하고, 그 두 선을 이은 것을 밑변으로 하는 이등변 삼각형. 등산도 야구처럼 안전하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야 완료된다. 마찬가지로 산에 오르기 전과 내려왔을 때의 사람은 다르다. 산에 갔다 온 사람은 나무를 닮는다. 눈이 웅숭깊고 그윽해진다.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 윤 씨는 말없이 또 배낭을 꾸린다. 그는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신념 같은 것도 없다. 평일은 사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술도 마셔야 하고,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토 일요일은 그의 해방공간이다. 산에 가서 논다. 아스팔트길을 신나게 달리며 논다. 처음처럼 늘 새롭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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