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05>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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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항왕도 눈과 귀가 있으니 우리 군세가 얼마나 큰지를 알 것이오. 거기다가 제왕(齊王)과 회남왕 그리고 양왕이 각기 정병을 이끌고 이른 줄 알면 아무리 무서움을 모르는 항왕이라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외다. 또 계포와 종리매가 아직 항왕 곁에 붙어 있는 것도 마음 놓이지 않는 일이오. 초나라 군중에서는 그래도 지모가 있는 자들이라 항왕을 달래 강동으로 물러나게 할 수도 있지 않소?”

한왕이 그렇게 말하며 응원을 구하듯 좌우를 둘러보았다. 장량이 나서서 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항왕은 계포와 종리매에게 5만을 주어 옛 성곽 안으로 들게 하고, 자신은 정병 3만과 더불어 새로 세운 진채의 방벽 안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항왕도 전과 달리 신중해진 듯합니다. 이는 성곽과 진채가 기각지세(기角之勢)를 이루게 하려는 것으로서, 나아가 싸우기보다는 물러나 지키기를 중시하는 포진입니다.

반드시 제왕께서 잘못 보신 것은 아닌 듯하나 밤이 길면 꿈자리도 사나워지는 법, 차라리 항왕에게 견주고 헤아릴 겨를을 주지 말고 하루빨리 결판을 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서(戰書)를 보내 항왕을 격동시키면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곳으로 초나라 군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량까지 나서 슬며시 한왕을 거들자 한신도 제 고집대로만 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장량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듣고 보니 자방(子房) 선생의 말씀도 옳습니다. 우리는 멀리서 온 대군입니다. 아무리 병참이 좋고 치중(輜重)이 잘 이루어진다 해도 3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먼 길을 와 싸우면서 날짜를 끌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싸움 날을 받는 대로 항왕에게 전서를 띄워 되도록 빨리 결전으로 이끌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한왕을 올려보며 물었다.

“대왕께서는 언제쯤 항왕과 결전을 치르시는 게 좋겠습니까?”

한왕이 두 손까지 저어 보이며 엄숙하게 말했다.

“그대는 산동으로 물러나 제나라를 다스릴 때는 제왕이지만, 과인의 군중(軍中)에 들어오면 아직도 한나라의 대장군이오. 무릇 위로 하늘에 이르는 자도 아래로 못(淵)에 이르는 자도 싸움터에서는 우두머리 되는 장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들었소. 싸움터를 고르는 것도 싸울 날을 받는 것도 대장군의 할 일이니 알아서 정하시오.”

그러면서 싸울 때는 늘 그래 왔듯 모든 것을 한신에게 맡겨버렸다. 이에 한신은 장수들과 의논 끝에 사흘 뒤로 싸울 날을 잡고, 곧 글을 닦아 패왕 항우에게 전서를 보냈다.

‘내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본받아 광무산에서 너를 놓아 보냈으면, 길을 재촉해 강동으로 돌아가 남은 목숨이나 보존했어야 하거늘, 이 무슨 방자하고 해괴한 짓이냐. 버마재비가 수레바퀴를 이기려 하고 달걀로 바위를 쳐도 유분수지, 싸움에 지고 흩어져 쫓겨 다니던 잡군(雜軍) 몇 만을 긁어모았다 해서 과인의 백만 정병(精兵)에 맞서려는 것이냐…’

한왕 유방의 이름으로 띄운 전서는 먼저 그렇게 시작해 패왕의 부아를 건드렸다. 그리고 다시 그의 별난 자부심을 건드릴 말만 골라 패왕을 이판사판의 싸움터로 끌어내려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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