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06>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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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지난날 너는 과인과 마주치기만 하면 대장부답게 맞서 싸워 당당하게 승패를 가르자고 졸랐다. 과인은 그때마다 터무니없는 군세로 요행을 바라고 기승(기승)을 노리는 네 잔꾀에 말려들기 싫어 노여움을 억누르며 마구잡이 난전을 피해왔다. 그런데 이제 들으니 너는 1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또 먼저 지리(지리)를 차지하여 과인과 대적할 만한 세력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과인의 대군이 이르렀는데도 당당히 나와 맞을 줄 모르니 이 어찌된 셈이냐? 보잘것없는 성곽과 진채에 기대 한 뼘 땅을 지키며 도둑 떼의 우두머리 노릇에 만족하려느냐? 아니면 강동으로 달아나 겁만 남은 그 목숨이나 건질 궁리에 바쁜 것이냐?

과인이 돌아보니 해하 서북쪽에 백만 대군을 풀어 장쾌하게 천하쟁패의 대전(대전)을 벌일 만한 땅이 있었다. 천하 뭇 백성이 과인과 너로 하여 전란에 시달린 지 벌써 5년째, 이제야말로 우리 둘이 한바탕 당당하게 맞붙어 결판을 짓고 그들을 괴로움과 슬픔에서 풀어줄 때가 아니냐? 이에 날을 정해 전서(전서)를 띄우나니, 네 진정 초나라 명장 항연(항연)의 핏줄이요 한때 천하를 호령한 패왕 항(항)아무개라면, 두렵고 겁난다 하여 숨거나 달아나지 말라. 전군을 이끌고 해하벌로 나와 과인의 대군과 건곤일척(건곤일척)의 싸움으로 자웅(자웅)을 가려보자.>

이 무렵 패왕 항우는 해하의 낡은 성곽을 다 고치고 진채를 방벽과 보루로 둘러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군이 사방에서 소리 소문 없이 몰려들었다. 서쪽으로 한왕이 이끄는 군사만 바라보고 있던 패왕은 한신과 팽월 경포까지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말을 듣자 은근히 놀랐다. 종리매와 계포에게 5만을 주어 성곽 안으로 들게 하고, 자신은 3만 정병으로 진채를 지켜 양쪽이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룬 뒤에, 사람을 풀어 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폈다.

패왕이 먼저 걱정한 것은 진채에 붙박혀 싸우면서 하염없이 시일을 끌게 되는 일이었다. 광무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문도 모르고 대군이 말라 시드는 꼴을 해하에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며칠 안돼 반가운 전갈이 왔다.

“남쪽에 있는 경포의 군사들을 빼고 한군은 모두 해하 서북의 벌판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30만 대군이 진세를 펼치니 실로 장관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한왕의 뜻이 초군을 에워싸고 싸움을 길게 끌고 가겠다는 것은 아닌 듯했다. 은근히 한시름 놓고 있는데 다시 한왕에게서 뜻밖에도 스스로 싸움을 재촉하는 전서가 왔다.

“유방 이놈, 이 겁쟁이 늙은 장돌뱅이가….”

구절구절 부아를 지르는 문면 때문에 패왕은 다 읽기 바쁘게 전서를 내팽개치며 그렇게 욕을 퍼부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기뻤다. 한왕과의 싸움에서 패왕이 늘 속상해한 것은 한번도 한왕의 본진을 마음껏 짓밟아 보지 못한 일이었다. 언제나 멀찌감치 숨어서 바라보며 사람의 화나 돋우다가 정작 쫓아가면 잽싸게 머리를 싸쥐고 달아나는 게 한왕 유방이었다.

“좋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늙은 목을 잘라놓겠다. 30만이 아니라 백만 대군이라 해도 이 전서에 적힌 대로 유방이 나오기만 하면 주머니 속에서 물건 꺼내듯 그 목을 잘라 단번에 전세를 결정하겠다.”

패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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