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주먹이 운다’의 소년원 복서役 류승범

  • 입력 2005년 3월 24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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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은 “예전보다 요즘 용기가 떨어진 것 같지만, 생각은 늘 ‘쿨’하게 하려 노력한다”고 했다.원대연 기자
류승범은 “예전보다 요즘 용기가 떨어진 것 같지만, 생각은 늘 ‘쿨’하게 하려 노력한다”고 했다.원대연 기자
기자가 오전 2시 서울 강남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커다란 머리가 어른거렸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탄 이 얼굴은 솜사탕같이 부풀린 파마머리를 한 채 “끼요!” 하는 괴성을 지르며 휙 지나가 버렸다. 말세다 생각했다. 그런데 많이 본 얼굴인데? 알고 보니 배우 류승범(25)이었다. 스팸과 볶음김치와 지렁이 모양의 젤리를 좋아한다는 류승범.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려요. 시원해져요. 아, 원래는 들어가면 안 되는데, 한강가로도 가서 달려요. 달리면 자유로워요.”

18일 만난 류승범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에 출연한 영화 ‘주먹이 운다’(4월 1일 개봉)에서처럼 정말 ‘막 사는’ 것 같아 멋지다. 영화에서 류승범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소년원 소속 복서 ‘상환’ 역을 맡아 노장복서 강태식(최민식)과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벌인다.

―이번에도 ‘개싸움’ 스타일이에요. 권투영화에서조차 왜 이전투구죠?

“전 ‘비트’의 정우성, ‘친구’의 유오성 장동건 선배처럼 멋있는 싸움을 한 적이 없어요. 전 절실하고 생명을 건 싸움을 하는 쪽이죠. ‘품행제로’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서도 최민식 선배와 ‘합’(구체적인 액션 동작)을 짜지 않았어요. 누가 앞선다, 밀린다, 팽팽하게 간다, 이 정도만 설정하고 진짜로 치고받았어요. 짜고 하면 관객이 알아요. 진짜 아파해야 돼요. 그래야 가슴도 더 아파요. 이 영화에선 그게 복싱보다 더 중요해요.”

―원래 잘 싸우나요?

“내가 폭력적인 성격이라고들 아는데, 싸움을 하나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지만 싸우기만 하고 산 건 아니었어요. 어려서 몇 번 싸워봤는데, 내가 주먹으로 살 놈은 아니란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 대결 장면을 제외하고는 최민식 씨와 각자의 분량을 나눠 따로 찍었다는데, 저쪽이 나보다 더 잘 하면 어떡할까 신경 안 쓰였어요?

“결론은 이랬어요. 최민식과 류승범은 다르다. 솔직히 경쟁심이야 있었죠. 두 인물이 팽팽하게 가야지 제가 뒤지면 그건 관객 모독이잖아요?”

―영화에서 눈빛이 완전 미쳤더라고요. 굉장한 광기에 몸서리쳤어요.

“상환이는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요.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때 인상을 쓰지 않죠. ‘그냥’ 봐요. 그리고 ‘그냥’ 행동하죠. 그는 남을 위협하지 않아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물어뜯죠.”

―레게 파마(상환이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가 인상적이에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머리 한 번 감으면 마르질 않아 고개가 뒤로 젖혀지더라고요. 여름에 냄새도 나고, 종일 머리 긁었어요. 예전엔 스스로 레게 머리를 한 적도 있었어요. 젊어서 안 하면 늙어선 못할 거 같아서. 근데 그 머리 어지간한 인내력 아니면 못해요. 베개 없이 자도 된다는 장점은 있어요. 그냥 머리 베고 누우면 돼요.”

―류승완 감독이 친형인데….

“친형이지만 진짜 대단한 감독이에요. 배우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나한테 이렇게 못 맡겨요. 예전엔 류승완 감독의 시나리오를 개인적으로 받아보고 출연결정을 한 적도 있지만, 요즘엔 안 그래요. 형도 저도 딸린 식구들이 있으니까 공식적인 루트를 통하려고 하죠.”

―이상하게 아줌마 팬이 많아요.

“반듯하고 완벽한 거보다는 늘 빈 듯하고 모자란 캐릭터라 그렇겠죠. 재벌 2세, 물론 엄청 하고 싶어요. 아리따운 여인하고 쫙 무게 잡고 싶어요. 하지만 배우는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역의 깊이를 파고드는 것도 해야 돼요. 전 지금 확장할 때가 아니라 깊이 팔 때에요. 저의 지난번 출연작인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도 나오잖아요. ‘구두닦이는 광나게 구두 닦는 게 득도의 길’이라고.”

―실제로도 사생결단 스타일인가요?

“예전보다 용기가 떨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은 ‘쿨’하게 하려 해요. 제가 하기 싫다고 거절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가 ‘대박’이 나도 ‘아, 내가 나오지 않아서 잘 됐나 보다’고 생각해요. 난 지나간 거 뒤돌아보지 않아요.”

―‘양아치 전문배우’라는 말도 있어요.

“나를 제대로 아는 관객이 그렇게 말한다면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그냥 이미지만 갖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반대예요. 나한테도 위험하니까요.”

―TV 드라마는 생각 없어요?

“내가 잠이 많아요. 근데 드라마는 (촬영하면서 배우들) 잠을 안 재워요.”

―애인 있어요?

“(약간 주저하며) 딱히 그런 건 없는데, 항상 뭔가를 사랑하고는 살아요.” (웃음)

―혹시 연상도 좋아하나요?

“연상? 글쎄요. 여자면 다 좋아합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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