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장중]교육부 성적관리대책 현실성 없다

  • 입력 2005년 3월 22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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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인 1744년 11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사도세자의 성적을 일부러 높게 매겼다가 왕세자의 스승이 임금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고교 졸업 자격시험 및 대입시험(A-Level)’의 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는 자체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도 했다.

요즘 국내에서는 학교장과 교사들이 시험문제 누출과 답안지 바꿔치기, 점수 조작하기 등 성적비리를 저질러 지탄을 받고 있다. 이처럼 학업성적 부풀리기와 평가비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만연한 성적 부풀리기와 평가비리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 추락을 낳고 사교육을 필요 이상으로 부추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교등급제 적용과 같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이런 가운데 10일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업성적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성적조작 비리교사는 교직에서 영구히 배제하며, 학업성적 비리가 발생하거나 성적을 부풀린 학교에 대해서는 행정적 불이익을 주고, 학교장에게도 연대책임을 묻도록 한 것은 꼭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 올해부터 교원의 ‘윤리의식 제고 연수’와 함께 교원평가를 시범 실시하고 2006년부터 점진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것도 환영할 일이다.

조직적인 수능 부정과 뒤이은 성적 조작 사건은 교육에 대한 신뢰감을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에 가담했던 학생들이 고개를 숙인 채 경찰서로 연행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러나 이번 대책은 2인 감독교사 배치와 학부모 보조감독 참여, 오전·오후 학년 구분 실시 등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 대한 부정행위 방지에 치중한 느낌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성적조작 등 평가비리에 관한 것인데 이에 대한 조치가 아주 미흡하다. 성적비리 제보와 내부 고발자 보호 등 학교와 교사, 학생 및 학부모가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성적 관련 비리를 근절할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학교 홈페이지에 평가계획과 출제문항만을 공개할 것이 아니라, 문항별 정답 비율 및 평균점수와 성적분포, 최근 3년간의 기출문제 같은 충분한 시험 정보를 함께 제공해야 실효성이 있다.

학부모가 보조감독으로 참여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실제로 ‘동원’되는 학부모들은 부담을 느낄 뿐 아니라 감독으로 참여할 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고 불만이다. 교권 침해 이야기도 있다. 더구나 이 발상은 처음부터 아이들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다. ‘무감독시험’의 전통을 유지하는 많은 학교들이 명예를 중시하고 있음을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 학교가 엄정한 성적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의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 ‘대충 공부=좋은 점수’는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게 만든다. 성적을 조작하고 부풀리라고 강요해 ‘자식 망치는’ 못난 짓을 멈춰야 한다. 진정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영조 임금의 당부처럼 학교 측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선생님.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엄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김장중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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