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관희]政資法 손질 아직 이르다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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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정치자금법이 엄격하다며 ‘돈 가뭄’을 호소하더니 국회의원 재산공개 결과 지난해 전체 의원의 68%인 201명의 재산이 늘었고 1인당 평균으로는 9300만 원 정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재산과 정치자금 모금은 별개이지만 어떻든 국회의원들의 사정이 개인재산을 정치자금으로 쓸 만큼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의정보고서 발간을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로 대체한다면 국회의원 선거 1년 전까지는 크게 돈 쓸 일이 없다. 유권자들이 의원들에게 찬조금을 요구하는 ‘관행’도 많이 사라진 것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지난해 총선을 엄격한 현행 선거법과 정치자금법하에서 깨끗하게 치른 것도 크게 기여했다. 현재 정치자금 모금 면에서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이런 분위기를 제17대 국회 임기 말까지 지속시키고, 필요하다면 그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자금법을 만들어 제18대 국회를 맞이하는 게 진정한 정치발전의 길이라고 본다.

깨끗한 정치자금의 원칙은 소수의 재력가에 의존하지 않는, 철저한 소액다수주의와 수입 지출의 투명성에 있다.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민의에 의한 정치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만든 현행 정치자금법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이상적인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인 및 단체의 기부 금지, 집회에 의한 모금 금지, 10만 원 이하는 아예 세액 공제를 해주는 철저한 소액다수주의 장려, 1회 100만 원 이상의 기부 및 50만 원 이상의 지출에 대한 철저한 실명제, 연간 120만 원 이상 제공자의 인적사항 공개, 예금계좌에 의한 수입지출 등이 그것이다. 국회의원 1년 모금한도 1억5000만 원은 소액기부자 1000명 정도를 확보하면 달성이 가능하다. 결국 의원 각자가 보다 많은 유권자와 대화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견 정책을 개발하면 세금이 공제되는 10만 원 정도는 기꺼이 기부할 소액 후원자를 1000여 명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현행 정치자금법의 핵심이다. 그게 바로 민의수렴 방법이기도 하다.

모금된 정치자금은 전문가 활용, 연구, 토론회 개최 등 정책개발에 많은 부분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원들은 지난 1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연한 정치적 갈등에 휘말리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각종 행사에 찬조금을 내 국회의원의 권위를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의 국회운영이 경제발전에 도움을 줬는지, 아니면 발목을 잡았는지 등 근본적인 물음이 있어야 한다.

권력과 돈을 함께 휘두르려는 과거의 행태는 확실히 버리고 정치자금 모금도 진정한 입법 활동과 사회적 갈등 해결의 연장선상에서 정도를 추구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6명의 보좌진을 가동할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정치자금법의 정신대로 자금을 모금할 여건이 돼 있는 것이다. 299명의 의원 중 63%인 187명이 초선임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새로운 정치관행의 창출을 위한 인적 토대도 마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몇몇 성공 사례가 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 정치는 소수의 재력가에게 의존하고 권력만을 추종하는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 행태를 과감히 탈피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의원 모두가 되새겨야 한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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