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연환]죽어가는 소나무 신고합시다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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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우리 산의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나무다. 그 소나무들이 지금 재선충병 때문에 큰 시련을 겪고 있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생한 이래 현재 전국적으로 30개 시군구에서 소나무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금년만 해도 경북 포항, 경주와 제주지역에서 새로 재선충병이 발생했다.

일본의 경우 1905년에 처음 발생한 재선충병이 현재 홋카이도(北海道)를 제외한 일본 전역의 소나무를 전멸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 대만을 비롯해 아시아의 8개국에서도 재선충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재선충병은 아직 천적이 발견되지 않아 한번 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100% 죽기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기도 한다. 재선충병으로부터 소나무를 살리는 길은 피해를 본 소나무를 빨리 발견해 불태우거나 훈증 처리하는 방법뿐이다.

11월이었다. 포항에서 소나무 재선충병이 새로 발생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전문가들과 함께 헬기로 피해지역을 돌아본 바로는 신규 발생지가 아니고 적어도 3, 4년 전에 피해가 시작되어 4000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완전히 죽은 상태였다.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소나무가 언제부터 죽기 시작했습니까.” “한 3, 4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소나무가 죽어 가는데도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그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요.”

집 뒤의 소나무가 죽어 가는데도 관심이 없었다. 마을 주민뿐 아니라 그 지역을 지나치거나 둘러본 어느 누구도 소나무가 왜 죽어 가는지 관심을 갖거나 궁금해 하지 않은 것이다.

제주도에도 재선충병이 발생했다. 골프장 안의 야산지대여서 잘 보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관계 공무원이 관심을 갖고 예찰했기 때문에 이를 즉각 발견할 수 있었고 바로 방제작업을 실시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언론에도 알려 재선충병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뒤로 하루에도 몇 건씩의 신고가 들어와 담당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나무를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포항과 제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나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차이가 아닐까. ‘대학’에 ‘심부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하고 청이불문(聽而不聞)하며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 없으면, 즉 관심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관심이 있어야 한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나무에 관심이 없으면 소나무가 3, 4년 동안 계속 죽어 가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죽어 가는 소나무가 보이더라도 왜 죽어 가는지 궁금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이 계절에 불우한 이웃에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주듯 나무에도 관심을 갖자. 나무도 우리의 이웃이 아니던가. 나무는 제 가진 것 다 벗어 주고 알몸으로 이 겨울을 나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소나무들이 철갑을 두른 듯 그 기상을 뻗치게 하자. 소나무, 그 푸름의 기상을….

조연환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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