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8월 넷째주

  • 입력 2004년 8월 22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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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8월 23일자 동아일보 1면 광고의 일부. 오늘날 신문들은 통상 1면 하단에 단일 제품 소개나 기업 홍보물을 싣고 있으나, 1950년대에는 주로 조각 광고들을 모아 실었다. 이날 동아일보 1면 하단에는 이 농약 광고 외에 변호사 개업 인사, 병원 홍보, 책 광고 등이 함께 실렸다. ‘유모 구함’도 눈에 띄었다.
1954년 8월 23일자 동아일보 1면 광고의 일부. 오늘날 신문들은 통상 1면 하단에 단일 제품 소개나 기업 홍보물을 싣고 있으나, 1950년대에는 주로 조각 광고들을 모아 실었다. 이날 동아일보 1면 하단에는 이 농약 광고 외에 변호사 개업 인사, 병원 홍보, 책 광고 등이 함께 실렸다. ‘유모 구함’도 눈에 띄었다.
6·25전쟁에 관한 기록영화나 사진들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아군 검문소를 지나는 피란민 행렬에 미군 병사가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려 대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와 벼룩 등을 구제(驅除)하기 위한 그 소독약이 바로 당시 획기적 살충제로 각광받던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이다.

DDT는 1939년 스위스의 파울 뮐러에 의해 그 살충 효과가 확인된 유기합성물. ‘해충을 없애 공공 건강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1948년 뮐러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DDT는 농약으로도 대량 사용되기 시작했다. 광고에서 보는 것처럼 DDT 성분을 섞은 ‘가루’를 채소에 뿌리면 배추벌레(靑蟲), 진딧물 등이 확실하게 구제됐던 것. 광고의 상품명 벤젠헥사클로라이드(BHC) 역시 DDT와 같은 유기염소계열 살충제의 일종이다.

그러나 질병 퇴치에 기여하고 농작물 생산량을 30∼50%까지 늘려 준 ‘효자 살충제’ DDT에 대한 찬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1962년 미국의 레이첼 카슨은 DDT 등 살충제 남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기록한 저서 ‘침묵의 봄’을 펴냈다. “살충제를 뿌린 후 새들의 노래 소리가 멈췄다”는 그의 고발은 격렬한 논란을 부르면서 환경운동을 촉발했다. 얼마 뒤 DDT가 암을 유발하며, 먹이사슬을 통해 계속 축적되어 인체에 만성중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국 미국에서는 1972년,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 사용이 금지됐다.

지금 DDT의 자리는 신종 살충제가 대체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농약 추방을 말하지만, 농약으로 인한 인체 피해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때의 농작물 수확 감소로 인한 인류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새로운 반론’도 나온다. 2002년 로이터통신은 DDT 사용 금지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말라리아 감염률이 12배나 늘어 매년 250만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통계를 전하며 집안에서 소량의 DDT를 살포하는 것은 안전한 만큼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열대병 전문가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넘기고 살아남는 데에 도움을 줬지만 생태계를 파괴하는 해물이라고 해서 퇴장당한 그 DDT를, 50년 전의 우리처럼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게 이 세상이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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