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9>1980년대 학생운동과 2000년대 학생운동

  • 입력 2004년 3월 3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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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1980년대 대학생활을 경험한 선배들과 대학생들이 만나 학생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옥, 박소연, 박경렬, 조대엽씨. 참석자 뒤편의 대형 스크린에 1987년 6월 항쟁 당시의 시위 장면이 흐르고 있다.   -변영욱기자
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1980년대 대학생활을 경험한 선배들과 대학생들이 만나 학생운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옥, 박소연, 박경렬, 조대엽씨. 참석자 뒤편의 대형 스크린에 1987년 6월 항쟁 당시의 시위 장면이 흐르고 있다. -변영욱기자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중) 온 국민이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1980년대. 당시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사랑이나 명예 이상 소중한 그 무엇이었다. 이들이 거리에서 흘린 피와 땀은 한국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1980년대의 시대정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고려대 조대엽 교수(44·사회학)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박병옥 사무총장(41)이 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2000년대 대학생 박경렬(25·서울대 응용화학부·전 서울대총학생회장) 박소연씨(20·성균관대 경영학부)를 만났다. 이들은 1987년 6월 항쟁에 대한 기록영상물을 보며 80년대 학생운동의 의미를 되짚으면서 오늘의 학생운동이 갈 길을 모색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그리고 386세대

▽박소연=비디오를 보면 1980년대 선배들의 용기가 참 대단했던 것 같아요. 누가 알아주거나 돈을 준 것도 아닌데…. 저라면 아마 못했을 겁니다.

▽박병옥=요즘 대학생들도 1980년대로 돌려놓으면 아마 똑같을 걸요. 시대가 그렇게 만든 거니까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준 충격은 컸습니다. ‘광주’에 대한 집단적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대학시절 내내 따라다녔죠. 이런 감정이 어느 순간인가 자연스럽게 폭발한 겁니다.

▽박경렬=억압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선배들이 거리에 나섰다고 생각해요. ‘독재타도’라는 분명한 목표도 있었고요.

▽조대엽=2002년 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돈과 명예 등 대가가 없어도 학생운동에 뛰어들던 시대였죠. 책이나 유인물 등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관념적 민중주의 성향을 체득한 세대죠. 그들의 거침없는 자신감이 독재정권이 휘두르는 폭력에 저항하는 힘이 됐습니다.

▽박병옥=386세대의 정서적 토양인 ‘광주’의 경험이 학생운동을 급진적인 이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80년대 후반 인간중심, 대중주의 노선을 강조하는 주체사상이 유입된 것도 학생운동의 대중화와 급진화에 영향을 줬고요.

▽조대엽=386세대는 어떤 면에서 ‘박정희의 아이들’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박정희 정권의 치적인 경제성장의 열매를 맛본 세대인데다 나름의 자긍심이 깔린 민족주의 성향, 거기에 더해 권위주의적 태도까지도 보입니다. 학생운동권에 서열을 강조하는 ‘의장님 문화’가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요.

#2000년대 학생운동은 진정 위기인가

▽조대엽=재야운동의 대중적 기반인 학생운동은 최근 빠르게 침체됐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변혁 운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줄고, 재야단체도 노동운동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학생운동이 약화되고 고립된 게 아닐까요.

▽박병옥=재야운동은 시민운동으로 확대 발전됐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학생운동은 1990년대 이후 학교 안에 묻혀 버렸습니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사회주의가 학생운동이 지향할 수 있는 이념적 지향이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났고요. ‘단결’과 ‘투쟁’보다 전문성과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접어든 거죠.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운동방식을 고수하는 학생운동과 사회의 괴리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박소연=학생들이 학생회에 거는 기대도 달라졌어요. 정치투쟁보다는 학내 복지에 더 신경 써달라고 요구합니다.

▽박경렬=학생운동권 내부는 1990년대까지 이념논쟁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시대변화에 따라가지 못했어요.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조직화된 지식인 집단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죠. 또 학생회의 기반인 학생들의 지지도 약해졌어요.

▽조대엽=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이념 지향적인 학생운동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렇다고 세계화, 민주화, 정보화 등의 메가트렌드 속에서 새로운 이념 논쟁을 벌일 수도 없습니다. 학생운동의 해체 징후를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거대한 사회 변화 속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1980년대를 넘어

▽박소연=지금은 1980년대와 전혀 달라요.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대학생들이 딴 짓을 못하게 얽어매고 있어요. 이 시대 젊은이들이 풀어야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박경렬=1980년대 학생운동은 한국 사회의 전환점에서 결정적 성과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선배들이 남긴 유산이 2000년대의 대학생에게는 오히려 ‘짐’이 되고 있어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주장을 펼치고 시위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인 데도 이를 운동권의 전유물로 봐요.

▽박병옥=‘학생운동’이란 말을 더 이상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문화, 환경, 평화 운동 등 각자 관심영역에서 활동하다가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면 함께 참여하면 되는 것이죠. 1980년대는 외부 지향적인 학생운동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가치를 찾는 내부 지향적인 운동이 필요할 때입니다.

▽박경렬=운동권, 비운동권 등의 이분법적 논리도 사라져야 합니다. 유럽처럼 생활정치를 할 수 있도록 대학사회가 바뀔 필요가 있어요. 모든 권력이 학생회장에게 집중된 학생회의 비민주성도 바뀌어야 하고요.

▽조대엽=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말을 빌려보면 1980년대가 제도에 저항하는 ‘해방의 정치’였다면 이제는 ‘삶의 정치, 생활의 정치’로 바뀌고 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통합하는 과정이 정치란 말이죠. 이런 점에서 학생운동과 학생회는 대학생의 삶 자체로 이해돼야 합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다면 이들을 영웅시하고 신성시하는 시각도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삶과 약자에 대한 관심’이란 1980년대 세대가 남긴 공동체주의는 사회적 자산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박 용기자 parky@donga.com

▼1980년대를 다룬 책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공지영·푸른숲)=암울한 1980년대에 ‘정의’라는 추상적이고 지순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숲 속의 방(강석경·민음사)=진정한 자신들의 ‘방’을 갖지 못하고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1980년대의 왜곡된 시대상을 함께 그린 소설.

○오래된 정원(황석영·창작과비평사)=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혁을 꿈꾸고 투쟁한 젊은 남녀의 삶과 사랑을 그린 소설.

○6월항쟁(유시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987년 6월 항쟁의 흐름을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감성을 토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이행과정(윤상철·서울대출판부)=1987년 6월 항쟁에서 1990년 3당 합당까지의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조명.

○6월 민주항쟁과 한국사회 10년(학술단체협의회·당대)=1987년 6월 항쟁의 전개과정과 이념 등을 되짚어보고 민족민주주의 운동의 과제를 분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전남사회운동협의회)=작가 황석영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10일간의 과정을 기록.

○광주민중항쟁과 5월운동 연구(나간채·전남대 5·18연구소)=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이후 항쟁의 확대 재생산 과정을 분석.

박용기자 parky@donga.com

▼참석자▼

조대엽(44)=고려대 교수·사회학

박병옥(41)=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박경렬(25)=서울대 응용화학부 4학년·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박소연(20)=성균관대 경영학부 2학년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주의 '신아크로폴리스'는▼

▽주제=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 그리고 분단의 역사

▽강사=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공개강좌는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5시 10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21층 대강당에서 열립니다. 안민포럼(www.thinknet.or.kr)으로 문의 바랍니다. 02-743-1786~8

※지금까지 게재된 내용은 동아닷컴(www.donga.com) '新아크로폴리스'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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