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배금자/이혼법정 억울한 여성 아직 많다

  • 입력 2004년 2월 16일 2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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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충고를 할 때에는 다섯 가지를 유념하라고 하셨다. 때를 가려서 하고, 진심으로 말하며, 부드럽게 하여야 하며, 의미 있는 일에 대해서만 하고, 인자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셨다. 필자는 지난번 ‘시누이에게 순종 안한 죄’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할 때 이런 자세로 판사 변호사 생활 총 17년의 경험을 통해 이 나라 인권 수준을 향상시키고 여성들의 억울함을 줄여 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글을 썼다.

며칠 전 이 지면에 ‘이혼법정 남녀차별은 없다’는 제목으로 반론이 게재됐다. 그분은 18년 판사 생활을 마치며 글을 쓴다고 했는데 내용도 법원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사전처분과 이행명령을 적극 활용해 이혼소송 중에 생활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생활에 지장 받지 않도록 후견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혼법정을 경험한 많은 여성과 변호사들은 이것이 사실과 다름을 알고 있다.

자기 명의로만 재산을 등기하고 소득이 있는 남편이 이혼소송을 당하면 보복으로 즉각 아내와 어린 자녀들에게 지급하던 생활비와 양육비를 중단하는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생계의 고통에 직면한 여성은 생활비와 양육비의 사전처분을 신청하지만, 법원이 여성의 생활비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원은 여성이 아프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생활비를 인정하며, 미성년 자녀들에 대한 양육비의 사전처분 신청도 이유 없이 기각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생활비나 양육비를 인정하는 경우도 평소 지급하던 액수를 대폭 감액한다.

반론문에서 ‘집을 나와 혼자 사는 아내에게’ 생활비를 줄이는 것은 정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하는데, 법원이 가출한 아내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생활비 청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전업주부에 대한 재산분할 비율을 높였다고 하는데, 재산분할제도가 시작된 91년부터 지금까지 전업주부에 대해 법원이 인정하는 기여도는 아직 30%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 이하인 경우도 많다. 가사노동과 병행해 남편의 사업체를 도운 아내의 경우도 기여도를 25%, 29% 등으로 낮게 평가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시누이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는 판결에 대해 남편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하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법원이 사실을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반론이다. 남편은 그런 주장이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판결문에서 처음 나온 표현이며 가치판단이 내포된 것이다. 위자료 산정은 변론의 전 취지를 참작하여 정하게 되어 있는데 법원의 이러한 가치관은 위자료를 산정하는 데 반영된다.

필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유리한 결론을 요구한 적이 없는데, 반론문은 이와 같이 왜곡된 결론으로 사회 일반인의 여성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자극하며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있어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정의실현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억울한 사람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진정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배금자 변호사

※이 글은 본보 13일자 여론마당 ‘이혼법정 남녀차별은 없다’에 대한 재반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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