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이은우/공정위의 힘 더 세진다는데…

  • 입력 2003년 2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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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재벌개혁’ 의지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가뜩이나 재량권이 많은 공정위가 더 많은 권한 확보에 나섰습니다.

공정위는 사법경찰권(강제조사권) 도입, 계좌추적권 영구보유, 전속고발권 유지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만큼 공정위의 힘이 쎈 나라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공정거래 위반을 중대한 범죄로 판단해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도 드물지요.

1890년 독점금지법(셔먼법)을 만들어 강력한 공정거래정책을 펴는 미국에서도 카르텔(담합) 등 일부 행위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정위에 독점적 고발권을 부여하는 전속고발권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도 고작 일본 정도입니다.

한국 공정위의 힘이 강할 이유도 몇 가지 있을 듯합니다.

미국에는 전속고발권 제도가 없습니다. 기업의 불공정행위로 피해가 생기면 개인이 바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승소하면 소송비용과 피해금액의 3배를 불공정기업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집단의 대표가 소송하고 판결의 효력을 함께 갖는 ‘집단소송제’도 도입됐습니다.

한국에는 승소할 때 비용의 3배를 보상받는다는 제도가 없습니다. 개인이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소송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이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노 당선자는 당초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했지만 최근 흐름은 다시 ‘유지’로 가닥을 잡은 것 같습니다.

공정위를 둘러싼 여러 제도들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소송제도가 개선되거나 기업 및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 공정위의 권한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겠지요. 다만 장기적으로 권한이 줄어들 때까지, 그 과정에서 공정위의 과도한 권한이 남용되거나 특정한 목적에 악용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더욱이 정치권력에 이용되면 안되겠지요. 한 곳에 집중된 지나친 권한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니까요.

이은우 기자 il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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