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경해/‘정부홍보’ 포장보다 진실이 먼저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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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극계의 대표적 여배우 P씨가 공연 중 대사를 잊어버린 일이 있었다. 공연기간 중에 시어머니상을 당해 장례를 치른 후 다시 선 무대에서였다. 이럴 때 대개는 적당한 대사로 위기를 넘기는 것이 관행이지만 그는 실수를 하게 된 경위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의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에 관객들도 감동했다고 한다. 무대와 객석이 어떻게 ‘신뢰’로 뭉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역대 정부의 홍보를 분석해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정부 홍보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홍보기법이라는 것이 그저 정부에 유리한 것은 부각시키고 불리한 것은 감추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PR 컨설팅 회사로서 각종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담당자들로부터 늘 요구받는 주문은 ‘기막힌 아이디어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홍보의 내용보다 포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 달라는 것이다. 실체보다 기법을 중시하는 ‘작위적 홍보’가 그간 홍보 활동의 기본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과거와 같은 체제 홍보의 필요도 없어졌고 정부 홍보도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부 홍보의 기본 패러다임을 확 바꿔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과 격의 없는 대화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정부의 메시지가 굴절 없이 국민에게 직접 전달되게 하고, 언론홍보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정부의 각 부처도 이런 새 틀 아래에서 신뢰와 정직에 바탕을 둔 홍보마스터 플랜을 수립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 특히 부처 홍보를 맡은 공보관들의 위상을 높이고 홍보에 대한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공보관은 출입기자만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홍보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기획자’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제 인간적 관계에만 의존하는 홍보는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 홍보의 콘텐츠와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은 올해의 주제를 ‘신뢰 구축’으로 내세웠다.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가 국가와 사회 및 기업 발전에 결정적 요소’임을 특히 강조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저신뢰 사회’로 분류했다.

해외에서 ‘코리아’라는 브랜드 파워는 우리의 경제적 위상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안으로는 정부나 공공부문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뢰는 진실을 바탕으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때 이뤄진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과 직접 만나고 있다. 자신의 정책을 편집된 내용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직접 국민에게 전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 당선자의 이 같은 행보는 앞으로 정부 홍보의 큰 틀이 바뀔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일방통행식 홍보는 이제 그 생명을 다했기에 더 이상 활용될 수 없다. 이제 정부, 기업 모두 진실을 알리는 것이 ‘최고의 홍보’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진실은 그 자체로 최상의 홍보다.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장·전 한국 PR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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