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16>소악루(小岳樓)

  • 입력 2002년 7월 25일 19시 07분


소악루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성산 동쪽 기슭에 있던 누각이다. 전라도 동복(同福) 현감을 지낸 소와 이유(笑窩 李유·1675∼1753)가 영조 13년(1737)에 자신의 집 뒷동산 남쪽 기슭에 지은 것이다.

한강의 강폭이 넓어져 서호(西湖) 또는 동정호(洞庭湖)로 불리던 드넓은 강물을 동쪽으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세워졌으므로 소악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소악루는 소악양루(小岳陽樓)의 준말이니 작은 악양루란 뜻이다. 본디 악양루는 중국 호남(湖南)성 상강(湘江)도 악양(岳陽)현의 현성(縣城) 서문(西門)의 문루 이름이었다.

이곳에 올라서면 동정호가 정면으로 바라보여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당 현종 개원(開元) 4년(716)에 뒷날 중서령(中書令·재상)을 지내는 장열(張說)이라는 이가 이곳 현령을 지내면서 지방 재사(才士)들로 하여금 악양루에 올라 시를 지어 재주를 다투게 하니 이때부터 악양루는 천하의 명승지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시성(詩聖)으로 받들어지는 두보(杜甫·712∼770)도 ‘악양루에 올라서(登岳陽樓)’라는 유명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에 증조부인 천지 이명운(天池 李溟運·1583∼?) 때부터 이곳 성산 동쪽 기슭을 차지하고 살아온 이유는 집 뒤 산기슭에 악양루와 같은 정자를 지어 천하제일 명승지를 만들고자 했다.

이유는 정종(定宗)의 제4 왕자인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茂生)의 9대손인데 그의 5대 조부인 대구부사 이준도(李遵道·1532∼1584)가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와 뜻을 같이하는 절친한 벗이었다.

그래서 이준도의 손자이자 이유의 증조부인 이명운은 광해군이 모후인 인목대비(仁穆大妃) 연안(延安) 김씨를 폐위하려 하자(1613) 홍문관 교리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물러나와 살게 됐다.

그의 집안은 율곡계의 조선 성리학 학통을 대대로 계승하고 있는 왕손 사대부 가문이라 생활 안목이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주거환경을 꾸며놓았던 모양이다.

성산 동변의 북쪽 끝자락에 해당하는 한강가에 높다랗게 자리잡은 기와집 안채는 한강을 내려다보게 동향으로, 또 한 채의 기와집인 사랑채는 남향으로 각각 지어져 있다.

그리고 그 기와집 아래로는 섭울타리를 둘러 별채의 성격을 분명히 한 초가들이 군데군데 지어져 있다. 딸린 식구들이 사는 협호(夾戶·본채와 떨어져 있어 다른 살림을 하게 된 집)일 것이다.

집 주변은 온통 큰 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집 뒷동산에는 소나무와 잡수림이 우거지고 집 앞 강가에는 버드나무 숲이 장관이다. 북쪽 산자락이 강가로 밀고 나와 집터를 명당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북산 기슭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북풍을 막아주게 했다.

협호 아래의 낮은 지대에는 연못을 크게 파고 연꽃을 심었는데 못 가운데에 섬이 있고, 섬 위에는 사모정 형태의 초정(草亭)이 지어져 있다. 사모정 둘레로는 버드나무를 비롯한 각종 꽃나무가 심어져 있고, 연못 좌우에도 몇 그루의 키 큰 버드나무가 있어 이 연못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소악루 남쪽으로 초가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홍살문이 높이 솟아있어 그곳이 양천 현아임을 짐작케 한다. 홍살문 뒤로 기와집 한 채가 우뚝 솟아나 있으니 아마 가장 동쪽 높은 곳에 있다던 객사(客舍)인 파릉관(巴陵館) 건물일 듯하다.

연못 아래 강가에는 두 척의 돛단배가 돛을 내린 채 정박해 있고 한 척의 거룻배는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 넷을 태운 채 마을로 들어오고 있다. 아마 풍류를 즐기기 위해 소악루를 찾아오는 일군의 선비들인 모양이다.

이 소악루는 1842년 편찬된 ‘양천현지’에 벌써 터만 남아있다 해서 겸재가 이 그림을 그린 지 100년 이내에 허물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울시는 겸재의 진경산수화인 이 ‘소악루’와 ‘소악후월’이 1993년 세상에 알려지자 이 그림들을 토대로 소악루 복원을 계획하여 1994년 6월 25일 이를 준공했다. 위치는 가양동 성산 상봉 부근으로 옮겨 잡았다. 영조 18년(1742) 비단에 채색한 33.3×24.7㎝ 크기로 김충현씨 소장품.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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