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스타]반지의 제왕 안정환 설바우두 설기현

  • 입력 2002년 6월 19일 00시 53분


▼'반지의 제왕' 안정환▼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리고 스탠드를 가득 메운 4만여 관중이 만들어낸 ‘붉은 물결’은 그가 흘린 기쁨의 눈물과 하나가 돼 “대한민국 만세”를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 곳곳으로 흘려보냈다.

안정환(26). 그가 한국 축구 역사를 나흘 만에 또 바꿔 놓았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8강에 올려놓은 귀중한 골든골을 터뜨린 안정환은 곧바로 왼쪽 코너부근으로 달려갔고 같이 달려온 선수들과 눈물을 흘리며 골세리머리를 펼쳤다.

안정환은 다른 선수들이 골세리머니를 끝낸 뒤 코칭스태프와 포옹하러 간 뒤에도 그 자리에 잠시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서서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서야 달려오는 박항서 코치와 포옹을 했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쫓아가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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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에서도 귀중한 동점 헤딩골을 터뜨렸던 안정환. 오늘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당’을 오갔다. 유일한 ‘빅리거’로 이탈리아를 꺾기 위해 선봉에 섰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전반 4분 상대 파울로 얻은 페널티킥을 자신있게 왼쪽으로 찼지만 상대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의 선방에 걸렸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스탠드의 팬들은 “안정환”을 외치며 응원했지만 영 마음에 걸렸다.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 열심히 뛰어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냈지만 전반 42분 페널티지역 외곽에서 날린 프리킥이 수비를 맞고 나가는 등 볼은 번번이 골문을 피했다. 그렇게 그를 외면하던 골은 전후반에 연장 전반까지 끝나고 승부차기가 유력시되던 연장후반 12분에 터졌다. 그 한 방은 자신의 과오를 씻는 골이기도 했지만 한국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의 역사도 바꿔버린 한 방이었다.

물론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빅리거’를 꿈꾸며 온갖 멸시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이겨냈던 ‘설움’을 날린 어퍼컷이기도 했다. 그것도 자신을 ‘동방에서 온 풋내기’로 조롱했던 ‘대 이탈리아’를 상대로. 그의 눈에서 진한 눈물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전〓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설바우두 설기현▼

‘킬러’는 결정적인 순간에 말한다.

‘설바우두’ 설기현(23). 골지역 중앙에서 후반43분 상대 수비수 맞고 나온 볼을 왼발로 가볍게 차넣은 뒤 코너 부근으로 달려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지옥’에서 다시 ‘천당’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젖힌 골을 잡아낸 것이다.

0-1로 뒤지고 있어 패배가 유력시돼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한국 관중은 일순간 ‘한밭벌’이 떠나갈 정도의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냈고 그 열기는 한반도를 뒤덮었다.

최종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평가전과 예선 3경기에서 좀처럼 골을 잡아내지 못했던 설기현. 이날도 최전방 공격수이기는 하지만 왼쪽 날개로 투입됐다. 스피드로 사이드를 돌파해 골을 잡아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임무.

시작부터 투지에 넘쳤다. 이탈리아의 수비수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마르크 율리아노의 집중마크를 받았지만 이영표와 김남일이 미드필드에서 사이드로 찔러주는 볼을 어떡하든 골문으로 다시 띄워줬다. 물론 결정적인 찬스가 왔을 땐 곧바로 슈팅을 날렸다.

‘유럽의 변방’ 벨기에 리그에서 뛰는 설기현이지만 이날은 이탈리아 세리에A 선수들 못지 않았다. 빈 공간이 있으면 언제나 달려갔고 볼을 빼앗겼을 땐 곧바로 볼의 침투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킬러 본성’은 경기 종료 직전에 나왔다. 황선홍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볼을 잡자 재빨리 호랑이가 먹이를 사냥하듯 골문으로 파고들었고 볼이 수비수 율리아노를 맞고 나오자 그대로 골네트로 차넣은 것이다.

유럽의 ‘빅리그’를 꿈꾸며 월드컵을 준비해온 설기현이 세계무대에 ‘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한 방이었다. 경기장은 물론 도시 곳곳, TV로 지켜본 팬들은 그의 한 방에 48년간 참아왔던 울분과 환희를 다 함께 지구촌 곳곳으로 날려보냈다.

대전〓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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