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그저 그런 수퍼컵

  • 입력 2002년 3월 11일 17시 01분


수퍼컵이 열리는 일요일. 드디어 프로 축구 개막이다. 비록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아니지만 지난해 K-리그 우승팀과 FA 컵 우승팀이 맞붙는 경기라면 볼만하니까,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는 경기겠다…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 평소처럼 오후 3시 경기에 맞춰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TV를 켰다.

오후 2시… 어라? 갑자기 TV 화면에 수퍼컵 로고가 뜬다. 처음엔 중계 예고인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3시 경기에 맞춰서 1시간 동안의 개막 행사? 하긴, 월드컵이 불과 두 달 남짓 남았는데 오프닝 이벤트라도 걸죽하게 할 모양이군!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경기장에는 선수들이 보이고 금방 경기를 시작할 태세다. 젠장! 오후 3시가 아닌 오후 2시 경기였다. 꼭 이런식이다. 아마도 중계 방송 문제 때문이겠지… 초장부터 "프로축구 주말 낮 경기는 오후 3시, 주중 야간경기는 수요일 저녁 7시"라는 공식 좀 지켜주면 안되나? 하긴 뭐, 제대로 시간 체크하지 않은 나의 게으름을 누가 탓할까!

그냥 그대로 앉아서 TV로 경기를 볼까 했지만 경기 내내 몸을 근질거리며 안절부절 못할 것은 뻔하고… 바깥 날씨까지 나를 유혹한다. 휴대폰에는 오후 1시 경에 누군가의 콜이 있었다는 흔적이 있다. 뻔하지… 늘 경기장에서 모이는 부류들이 축구 보러 가냐는 확인 전화를 했겠지…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간단한 먹을 것과 마실 것까지 두둑하게 챙기지만, 시간이 늦은 관계로 두툼한 옷가지만 급히 챙겨서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경기가 연장전까지 갈 경우, 그리고 경기장의 그늘진 쪽에 자리잡을 경우에는… 3월은 아직 춥습니다.)

오후 3시, 허겁지겁 경기장에 도착. 간신히 후반전은 보게 될 것 같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성남 모란역에서 경기장까지 이르는 길은 환락가를 걷는 묘한 기분이 든다. (밤에는 상당히… 흐흐.. ) 경기장은 예상 외로 썰렁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늦은 모양이다. 어라? 그게 아닌가? 보통은 경기장 부근에 닭꼬치와 오뎅, 컵 라면, 번데기 따위를 파는 니아까(리어카? 손수레?) 노점상들이 있다. 비록 후반전이 시작되었을 시간이긴 하지만, 경기장 노점상은 경기 후에 밀려 나오는 손님들을 챙기기 위해 쉽게 자리를 뜨지 않는다. 경기장 측에서 단속을 철저하게 했을까? 이 사람들, 경기 열리는 것 모르나? 아니면, 관중이 전혀 없나? 글쎄…

예상대로(!) 시간에 늦은 손님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아니, 아예 경기장 진행 요원들 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매표소는 닫혀 있었고 출입문 통제하는 사람도 없었다. 경기장 안전 요원이나 보조 요원도 없었나. 그냥…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면 그 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을 고정멤버들에게 전화를 한 통 때렸다. 예상 대로 그들은 늘 있던 그 자리에 뭉쳐 있었다.

경기장… 우선 반가웠다. 때는 이르지만 파릇한 잔디가 너무 반가웠고 그 곳에서 뛰는 선수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반가웠다. 드디어 리그가 시작된 모양이다. 이제야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 집구석에 틀어 밖혀서 TV로만 보고 있었으면 이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겠지. 오길 잘했어… 아무렴!

경기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본부석과 그 맞은편에는 비교적 일정수의 관중이 있었지만 열기가 푹푹 느껴지는 시즌 첫 경기는 아니었다. 양팀의 서포터스가 골대 뒤에 자리를 잡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붉은악마 신드롬'에 비한다면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였다. 놀랍게도 대전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올라온 모양이다. 작년에 최고의 시즌의 보낸 그들답게 수퍼컵을 위해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다. 서포터스의 숫자와 분위기 면에서는 K-리그 우승팀이자 홈팀인 성남을 누르고 있었다.

경기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이야기를 들으니 전반전에도 별로 볼 것이 없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이 둔하고 파이팅이 약해 보였다. 아직 시즌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대전은 이관우, 성한수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공백이 눈에 띄었고 최전방의 김은중에게 전달되는 볼의 빈도가 적었다. 공오균과 탁준석의 움직임은 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반면에 성남은 작년과 비교해서 별 손색이 없는 진영이다. 새로 모습을 보이는 성남의 용병들도 괜찮았고 샤샤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몇 차례의 슈팅, 그리고 골 포스트를 맞추는 불운이 있었지만 경기 내용에서 성남이 대전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골이 날 것 같지는 않다. 대전은 거칠고 완강하게 버텼으며 성남도 그다지 깔끔하게 마무리에 이르지는 못한다. 더구나, 경기장 분위기에서도 홈 팀이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양팀 선수들도 그다지 의욕과 투혼이 보이지 않는다.

아… 대전! 작년 FA컵 결승에서 보이던 빛나는 눈빛과 진지한 자신감이 보이지 않았다. 연봉 협상과 선수 등록 무산 위기를 겪으면서 팀이 다소 흐뜨러진 모양이다. 그리고 몇몇 주력 선수들의 이탈도 선수층이 엷은 대전으로서는 상당한 전력 손실을 가져왔을 테고… 대전으로서는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로 몰고 가는 쪽이 좋을 것 같다.

성남은 예전과 별반 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중원에서는 주장 신태용이 여전히 굳건함을 보였으며 두 브라질 용병이 눈에 띄었다. 작년의 전력이나 공격 패턴에 비해서 그다지 큰 변동은 없어 보였고, 올해에도 우승후보다운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성남의 키 플레이어인 신태용이 얼마나 활약해 줄 것인가, 그리고 믿는 도끼 샤샤가 얼마나 실천해 줄 것인가가 관건이겠지…

경기가 끝날 무렵 일이 터지고 말았다. 중앙선 부근에서 성남의 반칙성 태클이 있었으나 주심은 경기를 계속 진행시켰다. 홈팀으로서 누릴 수 있는 어드밴티지쯤 될까? 그런데…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상황에서 성남의 공격이 이어졌고 그대로 샤샤의 골이 터진 것이다. 경기 종료 1분전이었다. 공교롭게도 골이 터진 쪽은 대전 서포터스 앞이었으며 샤샤의 골 세레모니가 이어졌다. 대전 서포터스…기분 더럽겠구만!

성남쪽은 난리가 났다. 홍염이 피어 오르고 꽃가루가 뿌려지고 개선행진곡 등의 세레모니가 이어졌다. 홈 관중들은 나름대로 종료 직전의 결승골에 환호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경기 자체가 그리 흥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중들의 세레모니는 다소 칙칙했다.

그런데, 대전 선수들이 심판에게 항의를 한다. 경기는 다시 시작되지 못한 채 대전 선수들과 심판 사이에 이야기와 몸짓이 오간다. 아마도 득점 상황에서의 샤샤 위치가 오프 사이드 논란이 되었던 모양이다. 좀처럼 선수들의 흥분이 가라 앉지 않는다. 계속해서 옥신각신하는 상황! 갑자기 주심이 부심들을 불러 모은다. 앞선 판정에 대한 부심들의 생각을 들어 보려는 것일까? 아니다! 갑자기 주심이 부심들을 데리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대전이 계속 항의를 하면 몰수패를 선언하겠다는 심산인가? 심판이 삐졌나?

에이 쒸… 이것은 심판의 모습이 아니다. 어떻게든 경기장 안에서 해결을 해야지, 자신의 판정에 불복한다고 그냥 경기를 마감해 버린다? 그러면 2002 수퍼컵을 차지하는 성남은 1대0으로 리드를 잡고서도 '몰수승'이라는 딱지를 안게 된다. 패자인 대전도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경기할 맛도 안나고 볼 맛도 안난다. 심판은 경기장의 법관이기도 하지만 경기 운영자이기도 하다.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것 못지않게 경기를 원만하게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실점한 팀의 항의가 1-2분 이어진 상황에서… 경솔한 행동이었다!

다행히 남은 시간동안 경기는 계속되었지만 의미 없는 공이 날아 다닐 뿐이었다. 성남은 성남대로, 대전은 대전대로… 약 1-2분 동안의 맥 빠진 공방이 이어진 후에야 경기는 끝이 났다. 성남의 수퍼컵 우승 파티가 이어졌지만, 2001 한국 프로축구 통합 챔피언의 파티 치고는 왠지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골을 넣고도 어정쩡하게 이겨버린 성남, 승리를 도둑 맞았다고 느끼는 대전. 썰렁한 경기장. 그리고 그 구석 어디선가 경기를 지켜보는 나. 모두 어느 한 구석은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늘 그렇듯이… 성남의 선수들은 커다란 우승 통천을 들고 경기장을 한바퀴 돈다. 별다른 환호와 흥분 없이, 차분하고 익숙하게 성남 서포터스 앞을 출발한 통천이 대전 서포터스 앞을 지날 무렵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흥분한 대전의 서포터 누군가가 트랙을 도는 성남 선수단을 향해 쓰레기통을 던진 것이다. 2-3개의 쓰레기통이 경기장에 던져졌고 그 광경을 본 성남 서포터스와 관중석에서 흥분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다행히 한 순간의 흥분으로 끝났으며 별다른 충돌이나 사고는 없었다. (경기 후에 대전 서포터스가 직접 쓰레기통을 정리하는 것으로 볼 때, 순간적인 흥분을 삭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역시 홈은 홈이었던 것일까? 통천이 본부석 앞쪽의 관중 밀집지역을 지날 때는 커다란 환호성이 이어졌으며 성남 서포터스의 축하연은 쉽게 끝나지가 않았다. 그래… 우승은 좋은거지! 승자는 그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지! 함께 싸워서 이긴 사람만이 그 기쁨을 가질 자격이 있겠지. 그리고, 패자는 패자 나름대로의 아쉬움과 불만이 있을거고… 아마 나 자신이 승패와 상관 없는 제3자였기 때문에 경기가 지지부진 했는지도 모른다. 당사자들은 분명히 진지하게 최선을 다한 만큼 여느 경기와 마찬가지로 승자는 기쁨을, 패자는 아픔을 나누어 가졌을테고…

하지만, 제 3자의 눈에 비친 수퍼컵은 그저 그런 경기였다.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고 TV에는 축구를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과 광고가 눈에 띄게 늘었지만, 수퍼컵이 열린 성남 종합운동장에는 그런 열기와 긴장감이 없었다. 아무래도 오는 주말에 있을 내가 응원하는 팀의 홈 개막경기를 보아야 나의 2002 시즌이 제대로 시작될 것 같다. 늘 그렇듯이… 그렇게 2002시즌 K-리그는 어정쩡하게 시작되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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