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한국 스크린쿼터의 힘' 배운다

  • 입력 2002년 2월 21일 18시 04분


한국의 스크린쿼터제가 영화와 예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유럽의 벤치 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20일 프랑스 파리의 하원의사당 별관. 하원의 문화 가족 사회 위원회가 개최한 ‘프랑스와 유럽 영화의 미래’ 세미나에서 한국의 정병국(鄭柄國·한나라당) 의원은 ‘한국의 영화정책과 스크린 쿼터 시스템’이란 제목의 발표로 좌중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는 지난 해 12월 프랑스 하원내에 설치된 ‘프랑스와 유럽 영화에 대한 정보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의 무차별 문화 침공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는 유럽 영화의 자구책 강구였다. 이날 세미나에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관련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이 때문.

한국 대표단이 이 자리에 초청된 것은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가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인정됐다는 뜻. 프랑스와 유럽에 한국이 ‘문화 자존심 지키기 노하우’를 가르치러 온 셈이다.

정의원은 통시통역으로 진행된 발표에서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2000년에 35.5%, 2001년에 46.1%를 기록했다”며 “이같은 발전은 다른 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스크린 쿼터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한국은 영화진흥법에 따라 365일 가운데 최소 106일에서 최대 146일까지 한국영화의 유통 배급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는 미국이 자국 시장에서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반독점법과 같은 것이다. 국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원이 문화의 종 다양성 보호를 위한 세계문화기구 구성, 한 국가에서 특정국가(미국)의 영상물이 40∼50% 이상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반독점 협약 체결 등을 제안하자 세미나 장에는 박수 갈채가 터졌다.

정의원의 발표가 이처럼 관심을 끈 데는 할리우드 영화에 상처받은 유럽영화 산업의 자존심이 깔려 있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유럽 각국의 자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스크린 쿼터제를 도입했지만 아직도 자국 영화 점유율이 10%대. 한 때 세계 영화의 정상을 구가했던 이탈리아도 영화 제작비의 최고 90%까지 지원하고 있으나 자국 영화 점유율이 15% 정도.

프랑스는 TV 방송 수입과 영화 티켓 판매액의 영화 제작비 의무 할당, TV 방송의 자국영화 쿼터제 실시 등 온갖 보호장치로 지난 해 자국 영화 점유율 41%를 기록, 문화대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오죽하면 세미나 장에서도 “이런 지원이라면 프랑스 영화사는 망할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

이런 유럽의 눈에 별다른 제작 지원 없이 제도적 뒷받침으로는 거의 스크린 쿼터제 하나만으로 50%에 육박하는 자국 영화 점유율을 차지한 한국 영화가 경이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세미나 후반부에 참석한 카트린 타스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한국 영화의 괄목한 만한 성장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장 르 갸레 문화 가족 사회 소위원장 등 유럽 의원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에 대해 유럽 내부는 물론 한국과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홍준교수는 “이번 세미나는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계화에 대해 새로운 대안의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국참석자들 "스크린쿼터, 재정지원보다 효율적"

20일 프랑스 하원이 주최한 ‘프랑스와 유럽 영화의 미래’ 세미나에 초청된 정병국(鄭柄國·한나라당) 의원 등 한국측 참석자들은 “콧대 높은 프랑스와 유럽 정치인들이 한국영화의 성공사례를 경청한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정의원과 김홍준(金弘準) 영화진흥위 위원, 양기환(梁基煥)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처장 등을 한국측 발표 직후 하원 식당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스크린쿼터제 성공사례를 발표했는데 스크린쿼터제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장점은?

▽김위원〓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자국 영화에 사전 제작 지원방식을 쓰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하다시피하는 지금의 풍토에서 제작 지원은 필요하지만, 잘못 쓰면 온실에서 키운 화초처럼 영화산업이 자생력을 잃는다. 또한 제작비 지원은 재원 확보도 문제다. 스크린 쿼터제는 혈세를 쓰지 않으면서 영화산업의 자력 경쟁력을 키워주는 장점이 있다.

-그래도 자유경쟁이 대세인 지금 스크린쿼터제를 고수하다가 국제무대에서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양처장〓세계에 자국 영화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의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20여개국 밖에 안된다. 이 가운데 영화가 강한 중국 인도 이란 등은 스크린쿼터제보다 훨씬 엄격한 수입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자국영화 보호장치를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크린쿼터제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나라가 많다.

-오늘 세미나에서는 스크린쿼터제가 성공 사례로 발표됐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다시 스크린쿼터 존폐 논란이 일고 있는데….

▽정의원〓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 영화가 시장규모로 보아 크지 않은 한국의 스크린쿼터 분쇄에 집착하는 것은 각국의 자국 영화 보호 움직임의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한 것이다. 경제부처에서 스크린쿼터 폐지론이 나오지만 영화를 경제적 상업적 시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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