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주종환/'박정희 기념관' 명칭 바꾸자

  • 입력 2002년 1월 30일 18시 03분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관한 견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주목할 만한 말을 했다. “아버지는 좋은 일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분들에 대해선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못 다한 정치민주화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그러나 박 부총재의 이런 사과는 이제까지 그의 행적과 일치하지 않는다. 얼마 전 그는 ‘박정희 기념관’을 정부 예산으로 건립하는 일에 적극 찬동했다. 한쪽에선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박정희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의 사과를 어찌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현재 ‘박정희 기념관’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옆 서울시 소유 땅의 사용허가를 받아 착공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가 ‘박정희 기념사업회’와 맺은 협약에 따르면 기념사업회가 정부 지원금에다 모금된 돈을 합해 공공도서관을 건립한 후 서울시에 기부헌납하고, 그 도서관의 명칭과 운영 일체는 기념사업회에 일임한다는 것이다. 결국 ‘박정희 기념관’을 ‘박정희 기념도서관’ 형식으로 짓는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반민족적 친일장교 경력과 민주주의 압살 및 혹독한 인권침해 등 부정적 평가, 경제발전과 7·4남북공동선언 등 긍정적 평가의 양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설사 도서관 형식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봉착할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더욱이 그 건립기금이 국민의 세금으로 뒷받침되고 있으니 더 그렇다.

필자의 생각으론 이미 확보된 돈이니 그것으로 공공도서관을 짓되, 그 명칭을 ‘7·4 6·15 기념도서관’ 같은 것으로 바꾼다면 이 문제에 관한 찬반 의견대립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7·4남북공동선언은 설사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하더라도 재작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초가 되었던 역사적 선언이고, 어찌되었건 박 전 대통령 최대의 업적 가운데 하나다. 그렇기에 ‘7·4 6·15 기념도서관’이라면 이 문제에 관한 찬반 양론을 잠재울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다가오는 통일시대의 국민계도용으로도 유효하다.

박 부총재가 진정으로 과거 자기 부친의 잘못을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면, ‘박정희 기념도서관’의 명칭을 변경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의 부친의 과거 잘못된 행적에 대한 사과의 말은 전적으로 공허한 연막전술로 치부될 뿐이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으로 자기들의 과거 잘못을 역사 속에서 면죄받으려고 하는 냉전 수구 부패세력도 박 부총재가 앞장서 설득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설득만이 박 부총재가 정치인으로서 성실성을 입증하는 방법임과 동시에 그의 부친의 기대에 진실로 부응하는 길이라고 본다.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민족화합운동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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