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보디가드, 기발하면 다냐?

  • 입력 2001년 3월 9일 11시 40분


인간을 진열해놓고 뽑아 올린다. 보디가드 광고는 아이디어만 있고 마음은 삭 도려낸 무감증 광고다.

인형 뽑는 기계 앞에 다가오는 한 여자. 분홍빛 치마와 하얀 구두차림의 그녀는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이다. 오락게임 특유의 뿅뿅거리는 음악이 흐르자 다리를 쭉 뻗으며 한껏 섹시한 포즈로 게임 스타트~.

얼라라, 상자 안에는 알록달록한 봉제인형이 아니라 남자인형들이 진열되어 있네. 게다가 살아서 꼼지락대는 미니사이즈의 남자들. 갖가지 다양한 형태로 꾸민 남자들은 자신이 걸려들기를 바라며 애처로운 눈길마저 던지는데..

으랏차. 갈고리에 걸려든 첫 번째 남자는 아슬하게 잡히긴 했지만 버둥거리다가 툭 떨어지고야 만다. 그러다가 뚜뚜, 초점이 모아지며 여자의 레이다망에 걸리는 게 있었으니 바로 '보디가드'를 입은 남자. 여자는 마음 먹고 거뜬히 낚아 올린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고른 여자는 의기양양하게 걸어간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 쭉쭉빵빵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라. 치마벨트에 보디가드 남자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보디가드 남자는 뽑.혔.다! 소리치며 속도 없이 얼씨구나 좋아한다.

이 광고가 버젓이 공중파를 타는걸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그간 기발하고 재미난 광고를 보였던 보디가드가 이번엔 너무 오버했다. 인형뽑기라는 선풍적인 인기의 게임을 응용한 발상은 신선하지만 '생명 경시'의 표현 방식과 설정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인간이 우스워지지 않는가.

일차적으로 여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늘어서 있는 남자들은 그저 가련하다고 치자. 허나, 더 심각한 문제는 남자들이 갈고리에 의해 집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자기 손 안에 놀아나는 모습을 즐기는 가학적인 여자의 모습은 폭력적이다.

아무런 정서적 여과 없는 이 불감증의 광고. 뻔뻔하게 이렇게 물어올런지도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걸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건 개인의 자유잖아?'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한계가 극단적으로 치닫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서서히 황폐해지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신문 사회면엔 경악할만한 이슈가 나온 적이 있다. 뭐냐하면 인형뽑기 업그레이드 버전 '동물 뽑기' 게임이다. 이름 그대로 살아있는 동물을 상자 안에 넣어놓고 뽑는 거다. 그 발상 자체가 기가 막히다. 바다 가재, 햄스터, 병아리들은 집게손을 피하다가 상처를 입기 일쑤고 뽑혀서 집으로 간 동물들은 대체로 버려지는 운명이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동물이 인형보다 더 긴장감 있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혀를 차면서 한편으론 두려워진다. 머지 않아 이런 일쯤 아무런 문제도 아닐까봐. 혹여 보디가드 같은 광고가 판을 치고 스스럼없이 동물을 뽑다가 정말로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이디어만 쫓다가 한계를 넘은 보디가드. 생명을 경시하는 이 못된 광고는 어서 폐기처분하고 부디 정서순화하길!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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