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루이 끈질긴 추격에 조9단 진땀

  • 입력 2001년 3월 7일 19시 03분


조훈현 9단은 느긋한 마음으로 반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중반 한때 중앙에서 두 번 연속 완착(緩着)을 두긴 했지만 이후 상대인 루이나이웨이 9단의 큰 실수로 장면도 백 ○를 품에 넣어 반면 15집 이상 앞서 있다.

6일 열린 제44기 국수전 도전 5번기 2국. 1국에서 승리한 조 9단은 오후 6시 무렵 흑 필승의 형세가 되자 ‘이제 1승 남았다’는 여유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바둑을 검토하던 목진석 5단, 안조영 6단 등 젊은 기사들은 형세가 크게 기울자 이날 생일을 맞은 목 5단의 생일잔치를 하자며 기사실을 떠나 버렸다. 같이 검토하던 서봉수 9단도 “왜 안 던지지. 아쉬워서 그럴거야”는 혼잣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적막해진 검토실. 하지만 대국실의 루이 9단은 처절한 인내로 무거운 발길을 한 걸음씩 옮기고 있었다. ‘지난해 어떻게 따낸 국수인데…’하는 생각에 마지막 1분 초읽기에 몰려가면서도 손에서 돌을 떼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한 조 9단은 두텁게 둘 작정인 것으로 보였다. 백이 1로 좌변에서 뻗어나온 백대마를 연결하자 ‘가’로 끊는 맛을 없애기 위해 흑 2로 지켰다. 끝내기로 무척 큰 수인데다 두터워서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고 확신한 수.

하지만 그 순간 조 9단의 바늘끝 만한 방심의 틈을 비집고 루이 9단이 패배의 절벽을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3, 4의 기분좋은 선수 교환 뒤 5로 잇는 것이 사건의 시작. 아직까지 ‘설마’하고 생각하던 조 9단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백이 9, 11로 귀를 끊은데 이어 중앙 흑 다섯점을 잡아버리며 백 ○를 살리자 졸지에 반집 또는 한집반을 다투는 미세한 형세가 돼버렸다.

조 9단이 장고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곧 끝날 것으로 여겼던 바둑이 ‘이제부터의 바둑’이 돼버린 것. 조 9단은 ‘아, 그 좋던 바둑을 놓친다면…’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 9단이 멋진 승부수를 성공시킨뒤 마지막 한 수에서 삐끗한다. 검토실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장주주 9단이 백 19를 보자 서투른 한국말로 “어, 왜 20에 잇지 않지”하며 탄식한다.

백이 20에 이어두었으면 흑은 좌변에 잡힌 백대마를 다 놓고 따야 하는 진행이 될 수도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흑이 한 수 더 두면 백이 다른 큰 곳을 둘 수 있었다는 것. 흑 20이 두어지자 미세하지만 흑의 승리가 확정됐다. 루이 9단은 마지막까지 불리한 패를 자청하며 처절하게 버텼지만 승부를 뒤집을 순 없었다. 오후 8시45분. 10시간 가까운 승부 끝에 조 9단은 진땀나는 승리를 챙겼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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