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연의 스타이야기]진지해서 웃긴 남자, 벤 스틸러

입력 2001-01-18 18:34수정 2009-09-2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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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미트 페어런츠>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짐 헤르츠필드와 존 햄버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줄곧 퍼커 역으로 짐 캐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벤 스틸러보단 짐 캐리 쪽이 관객몰이에 힘을 싣기에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짐 캐리의 이름 값에 혹했던 그들은 다행히 쉽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퍼커는 능청스럽기보다 어리숙한 이미지로 승부를 봐야 하는 캐릭터. 능글능글한 짐 캐리보다 순박한 벤 스틸러가 퍼커 역에 적격이라는 걸 그들은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벤 스틸러가 없었다면 <미트 페어런츠>는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 미운 털이 박힌 예비 사위와 사윗감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장인(로버트 드니로)의 유쾌한 신경전을 담은 이 영화는 벤 스틸러에게 크고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다. 잘못 뱉어낸 말을 수습하기 위해 허둥대고, 고양이 징스를 잡으려 발버둥치는 이 대책 없는 남자는 너무 모자란 캐릭터인 나머지 오히려 더 정이 간다.

이 영화에서 벤 스틸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로버트 드 니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벤이 재미있는 이유는 자신이 전혀 웃기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생각해보면 벤 스틸러는 진짜 웃기려고 작정하고 웃겼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진지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이놈의 '엿 같은(Fucker)' 상황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순박한 남자 테드도, <키핑 더 페이스>의 유대교 랍비 제이크도 따지고 보면 모두 비극적인, 너무도 비극적인 캐릭터들이다.

사실 그만큼 슬픈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머피의 법칙'의 가장 완벽한 증거물이었다. 하필이면 여자 친구 집 화장실에서 바지 지퍼에 '중요한 물건'이 끼이질 않나 장인이 아끼는 유골단지를 와장창 깨뜨리지 않나, 매번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을 살았던 남자가 바로 그다.

그러나 현실의 그는 절대 비극적이지 않다. 65년 11월30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재능 많은 부모님을 둔 덕에 DNA 구성인자가 좋았다. 그의 부모는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제리 스틸러와 앤 메라. 어릴 적부터 웃음에 대한 감각을 익힌 그는 10세 때 어머니의 드라마에 아역으로 출연해 이른 데뷔전을 치렀다.

우디 앨런, 스티브 마틴 같은 코미디 배우를 우상처럼 떠받들었던 이 '웃기는 꼬마'는 그러나 정작 꿈이 다른 데 있었다. 사실 그는 코미디언이나 배우가 아니라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다.

10세 때 이미 8mm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었던 그는 현재 그 꿈을 모두 이뤘다. 위노나 라이더, 에단 호크 주연의 <청춘 스케치>와 짐 캐리 주연의 <케이블 가이>를 감독했고 미국 최고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패널과 '벤 스틸러 쇼'의 호스트, <태양의 제국> <키핑 더 페이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트 페어런츠>의 배우로 활동해온 전천후 탤런트. 게다가 그는 존 구어의 <푸른 잎의 집>을 각색한 연극으로 토니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을 느껴봐>라는 책을 출간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비록 <케이블 가이>를 연출한 후 지독한 악평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현재 그는 악몽에서 벗어날 채비를 이미 다 갖춰 놓았다. 벤 스틸러가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 연출자로 참여하는 <줄랜더>는 그의 재능이 만면으로 발휘될 원맨 세션의 영화. 이밖에 진 해크먼, 기네스 팰트로 등의 쟁쟁한 스타와 함께 곧 <로얄 타넨바움>이라는 영화를 찍게 될 예정이다 .

정신없이 바쁜 일정에 시달리고는 있는 '워커홀릭' 벤 스틸러는 그저 보고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험한 세상의 해독제같은 남자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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