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연의 스타이야기]열두 밤을 함께 하고 싶은 여자, 장백지

입력 2000-12-28 17:36수정 2009-09-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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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눈썹이 너무 짙어. 턱도 지나치게 뾰족하고…다리는 몸에 비해 너무 뚱뚱해." 카메라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장백지의 얼굴을 애무하듯 쓰다듬고 있는데, 정작 그녀의 애인은 수긍할 수 없는 헛말만 속사포처럼 쏟아 붓는다.

<십이야>의 그녀. 마른땅에서 기어올라온 꽃무더기처럼 혈색 짙은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도 이 영화에선 별수 없이 안타까운 사랑의 굴곡을 겪는다. 격정적인 사랑의 폭풍 뒤에 찾아오는 권태, 지루함,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장백지는 이런 촉촉한 사랑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배우다.

눈 먼 남자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 넣어준 간호사 초란(성원), 구질구질한 사랑싸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저 혼자 지쳐 나가떨어진 항공사 여직원 지니(십이야)…. 이 촌스럽고 뻔한 사랑 이야기에 생기를 더한 건 분명 장백지의 청순한 얼굴이다. 그녀는 누가 봐도 예쁘다.

◇평범한 소녀에서 '사랑의 여신'으로

젊은 날의 장만옥과 임청하를 떠오르게 하는 그녀는 홍콩 배우들이 흔히 그렇듯 가수와 영화배우를 겸하는 전천후 탤런트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숨길 좋아하고 늘 자신감이 없었던 비릿한 풋내기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98년 우연히 출연하게 된 광고 한 편이 그녀의 삶을 바꿨다.

1980년 5월24일 홍콩에서 태어난 그녀는 호주에서 고등학교 (Rimit Holmes)를 다녔고 얼마 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때만해도 그녀는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 지 아무 것도 몰랐다.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고 출연한 광고가 뜨고, 영화 출연제의가 쇄도하면서 서서히 그녀는 평범한 소녀에서 스타로 변해갔다.

그녀의 영화 데뷔작은 기라성 같은 선배 주성치, 막문위와 호흡을 맞춘 <희극지왕>. 엑스트라인 주성치에게 연기 수업을 받다 연애감정까지 느끼게 된 나이트클럽 아가씨 피우가 그녀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성원>은 아직 덜 여문 여배우의 앞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홍콩 판 <사랑과 영혼>이라 불리는 <성원>에서 그녀는 부와 명예를 따지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여신이 되었다.

그 뒤 <열화전차>의 속편 격인 테크노 액션영화 <극속전설>에서 무한질주를 즐기는 남자 스카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자 낸시를 연기한 그녀는, 곧 자신의 장기인 멜로 영화 히로인으로 다시 돌아왔다(<극속전설>과 <십이야> 사이에 찍은 <동경공략>은 카메오로 잠깐 얼굴만 비췄던 영화다). 바로 사랑의 굴곡을 12단계로 나누어 보여주는 영화 <십이야>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녀는 <십이야>가 그려나가는 사랑에 깊이 흡수되지 못했다. 한 남자에게 푹 빠져 모든 주파수를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만 맞춰놓고 사는 여자. 자기애를 완전히 포기한 여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전 <십이야>의 지니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여자예요. 지니는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며 사랑을 받으려 하는 수동적인 여자지만 전 그렇지 않거든요. 솔직히 평소 지니 같은 여자를 너무 싫어했어요.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로를 지켜가며 이해해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녀는 "<십이야>를 찍으면서 여자들의 잘못된 사랑관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여성 감독 임애화와의 작업도 퍽 마음에 들었던 눈치다.

"<희극지왕>이나 <성원>을 찍을 때완 촬영장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임애화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배우들의 연기에 자신이 의도한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애쓰셨죠. 그때마다 느낀 건 <십이야>가 바로 감독님 자신의 연애담이라는 거예요."

◇가수와 배우로 종횡무진 활약

<십이야> 촬영을 마친 그녀는 <동경공략> 이후 정이건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 <랄수회춘>, 매염방 정수문과 공연한 <종무염>을 찍었고, 서극의 <촉산> 리메이크 작품인 <촉산정전>, 사정봉과 공동 주연을 맡은 <노부자>에도 곧 출연할 예정이다.

또 하나, 장백지는 현재 한국영화 <파이란>의 여주인공을 맡아 한창 촬영을 진행중이다. <철도원>의 원작자인 아사다 지로의 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한 영화 <파이란>은 뒷골목 삼류 인생에게 찾아온 낯선 사랑을 담은 서정적인 멜로 드라마. 이 영화에서 이모를 찾아 한국에 건너와 험난한 삶을 이어가는 중국여자 파이란을 연기한 그녀는 주인공 파이란에 대해 "외유내강형 여자"라고 담백하게 소개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욕심을 낸 이유는 "외국에서 촬영한다는 점이 신선하고 도전적인 경험이 될 것 같아서"라고. <카라>의 송해성 감독, 배우 최민식과 호흡을 맞추는 <파이란>은 2001년 4월 국내 개봉될 예정이다.

너무나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가수 활동에도 열심이다. 98년 초 출시된 싱글 앨범 '임하천기(任何天氣)', 첫 번째 정식앨범 'Destination', 남자친구인 진효동과 함께 한 라이브 콘서트 실황을 담은 '903 광열빈자음악회(狂熱 子音樂會)', 두 번째 정식 앨범 'A Brand New Me', 자신의 영어 이름을 타이틀로 내세운 'Cecilia Cheung' 등 그녀는 여태껏 총 5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정말 되고 싶은 건 네 아이의 엄마

숨 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아시아 최고의 스타 자리에 안착한 그녀는 그러나 "이 모든 부와 명예를 잠시 즐길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진짜 꿈은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그녀는 늘 "양손에 두 아이 손을 잡고 한 아이는 남편 등에 업고, 임신한 몸으로 시댁, 친정 식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장난감 가게를 쇼핑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야기한다.

10년 후쯤 그녀는 정말 그런 '행복한 아줌마'가 되어 있을까? 아직까지는 청순한 이미지에 가려 네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의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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