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기동경찰 패트레이버>,리얼 로봇물의 정점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7시 40분


가까운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에는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레이버(Labor)'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부족한 토지를 벌충하기 위해 도쿄만을 메우는 거대한 간척사업 '바빌론 프로젝트'가 시행되자 레이버의 수요가 급증한다. 늘어난 레이버를 이용한 범죄도 그만큼 증가하고 경찰청은 레이버 범죄만을 전담하는 경비부 특차2과를 창설한다.

오직 레이버가 좋아서 특차2과에 지원한 스무살의 노아 이즈미(오유리)가 이 만화의 주인공. 2소대 1호기 조종석에 배치된 이즈미는 레이버를 향한 애정과 반짝이는 기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신참대원 티를 벗어간다.

노아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활약하는 2소대 대원들의 고단하고, 평범치 못한 공무원 생활이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레이버'라는 새로운 개념의 치밀한 설정과 섬세한 묘사, 그 존재로 인한 사실적인 사건 전개 등은 기존의 그 어떤 만화에서도 볼 수 없던 색다른 리얼리티를 빚어낸다. 22권의 만화와 동시에 (일본에서는 94년 완결) OVA, TV 시리즈,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한 <패트레이버>는 건담과 마크로스로 대표되는 리얼 로봇물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각종 레이버는 필살기를 연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도 아니다. 새로운 종류의 건설 중장비라 할 수 있는 인간형 기계, 그것이 레이버이며 이것은 '로보트'의 원개념에 근접한 사실적인 설정이라 볼 수 있다.

레이버는 허리를 굽힐 수 없는 대신 팔이 늘어나며, 물이 닿으면 녹슬고, 기동시키기 위한 전용 OS가 존재한다. LOS (Labor Operating System)는 레이버의 기동과 일련의 동작에 필요한 시스템 전체를 제어하며, LOS를 사용함으로써 조종자는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자동차를 모는 것처럼 레이버를 운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2소대가 보유하고 있는 레이버 '잉그램'은 인간과 가장 흡사한 구조뿐 아니라 뛰어난 성능을 지녀 레이버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손가락 관절을 이용해서 리본을 묶을 수 있을 정도다. 잉그램의 우수성은 다국적 기업 샤프트(SCHAFT)가 잉그램을 능가하는 레이버 '그리폰'을 제작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되는 동기를 제공하며, 샤프트와 2소대와의 싸움은 방대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축이다.

결국 레이버라는 가상의 기계를 둘러싼 암투와 기업 경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갈등의 또다른 단면이기에 <패트레이버>가 지닌 로봇물로서의 리얼리티는 각별하다. 작가 유우키 마사미는 짐짓 심각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뼈있는 개그로 포장해냈다. 무엇보다도 박봉의 말단 공무원들이 액션, 코믹, 멜로, 패러디, 스릴러, 추리물을 넘나드는 다양한 에피소드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가상의 근 미래를 떠난 현실의 그것이기에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누구라도 <패트레이버>를 펼치는 순간 영웅주의 일색의 로봇물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날리게 될 것이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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