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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의 시네닷컴]웃음뒤에 숨은 '비만혐오증'

입력 2000-10-26 18:39업데이트 2009-09-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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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입어 잘난 사람 없고, 잘입어 못난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옷은 인간을 통찰하는 매개다. ‘월든’을 쓴 H D 소로우는 ‘옷을 벗겨버리면 사람들이 각자의 지위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영화 ‘으랏차차 스모부’는 이제 옷이 아니라 몸 그 자체가 지위를 상징하는 시대가 됐음을 보여준다. 스모를 다뤘지만, 내겐 몸에 대한 영화로 읽혔다. 이 영화는 설명 이전에 훈도시만 차고 벌거벗은 몸을 통해 등장인물들간의 우열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체격 좋은 주인공은 팀의 리더가 되고, 뚱뚱하거나 근육 없이 뭉실뭉실한 몸매의 남자들은 죄다 조연급이다. 미소년 하루오도 비쩍 마른 몸 때문에 배역에 비해 영 존재감이 없다. 반면 스모팀에 낀 근육질의 영국인은 낯설기는 커녕 우월해보인다.

이 영화에서 몸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묘사는 뚱뚱한 여자 마사코가 스모 경기에 나서는 장면. 누군가는 여자의 모래판 입장이 금지된 스모 경기에 여자가 출전한다는 설정이 전통의 새로운 계승을 뜻하는 거라고 해석했으나, 내게는 마사코의 끔찍하게 출렁이는 뱃살과 허벅지살을 보여주는 이 코믹한 장면이 비만에 대한 혐오와 조롱으로만 보였다.

개인의 몸은 사회의 위계가 새겨지는 장이다. 마름과 뚱뚱함은 늘 부를 표시하는 기호였다. 19세기에만 해도 보들레르는 ‘여윈 몸은 기름진 몸에 비해 한결 천하게 보인다’고 했지만, 인류학자들의 연구결과는 현대의 풍요한 사회에선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중상류층보다 뚱뚱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만이 키나 피부색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팻걸(Fat Girls)’ 운동이 인터넷을 통해 번져가고 있어도, 비만 혐오증이 만연한 현대의 영화에서는 늘 뚱뚱한 여자가 불행의 상징처럼 묘사된다. 개봉대기 중인 ‘파이어웍’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얼마나 불행한지를 거대한 몸집의 마누라를 보여주는 단 한 장면으로 설명해버린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인 리안 감독의 ‘라이드 위드 데블’도 예외는 아니다. 19세기가 배경인데도 주인공 제이크는 친구가 “아버지가 널 위해 점찍은 신부감”이라며 어떤 여자를 가리킬 때 질겁을 한다. 통통한 여자였던 것이다.

비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분통터질 일이지만, 점점 더 몸을 통해 지위와 역할을 설명해버리는 영화들이 느는 것을 보면 속담도 이제 바뀔 때가 온 것 같다. ‘뚱뚱해서 잘난 사람 없고, 날씬해서 못난 사람 없다.’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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