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무엇을 가르치나

  • 입력 1997년 9월 17일 20시 15분


요즘 사(私)교육비 문제다, 학원가 비리다 해서 온 나라가 걱정이다. 아이 과외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어머니들이 파출부로 나서기도 하고, 과외비를 마련하지 못한 소심한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가 막히는 일도 있었다. 직장에서도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식을 둔 간부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그 첫번째가 교육문제,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비용 문제다. ▼ 창의력 빼앗는 교육 ▼ 교육전문가라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왜 이렇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속 시원하게 풀리지가 않는다. 우스갯소리지만 교육문제, 교통문제만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분이면 선거 때 표를 찍어주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나는 기업경영을 하다보니 비용과 효용을 따져보는 습관이 몸에 젖어 있다. 지금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하는 교육비용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학부모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남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더 나은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비 지출의 직접적인 효용은 좋은 직장에의 취직, 바로 그것인 셈이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교육이나 학벌 그 자체 보다는 새로 기업에 들어온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이다. 아무리 우수한 학교를 나온 수재라도 입사 후에 평범하고 정해진 일만 잘한다면 그 사람의 효용은 별로 크지 않다. 흔히 사람들은 삼성을 인재의 집단이라 한다. 나는 항상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삼성의 인재들이 세계 유수기업의 인재들과 비교해서 창의력이나 혁신적인 사고가 더 뛰어나냐고 묻는다면 별로 자신이 없다. 삼성에 들어온 인재들은 대부분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제도에서 가장 잘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은 오히려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삼성의 잘못도 아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삼성에 들어온 사람들의 잘못도 아니다. 교육을 일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도구로 만든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잘못이다. 교육의 기본목적은 사회에 필요한 수많은 일들을 잘할 수 있는 인재를 배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에 들어가는 돈도 이런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 그 돈이 학부모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느냐, 나라의 재정에서 나오느냐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육의 목적이다. ▼ 학벌아닌 능력길러야 ▼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일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순위 매기기」에 쓰이고 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기업들은 학벌이 아니라 능력을 원한다. 앞으로 인력이동이 좀더 자유화된다면 내외국인에 관계없이 능력있는 사람들을 쓸 수밖에 없다. 천문학적인 교육비용이 기껏 자리매기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은 기업에나 사회 전체에나 크게 불행한 일이다. 교육행정가들은 이렇게 막대한 사회적 재원을 실질적인 능력을 만드는 일에 쓸 수 있는 방법을 하루빨리 찾아내야 한다. 이건희(삼성그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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