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說과 바람의 계절

  • 입력 1997년 8월 22일 20시 08분


吳益濟(오익제)씨 월북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색깔공방이 참으로 가관이다. 신중해야 할 대공(對共)문제까지 당리당략의 제물로 삼아 이렇게 마구 치고받아도 괜찮은지 한심하다. 안보에 관한 한 초당적으로 대처하자는 어제의 다짐들은 모두 까맣게 잊고 있다. 국익(國益)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 「對共」까지 黨略의 제물 ▼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가 왜 이러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풍토병이 색깔논쟁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빨리, 그것도 도가지나치다.두당의 대변인 부대변인들이 총출동해서 연일 번갈아가며 쏟아붓는 이른바 성명논평은 막가파식 욕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우리 정당에 대변인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오씨는 천도교 교령과 국민회의 고문, 평통 상임위원을 지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굶주림과 인권불모의 동토로 잠행했는지 우선은 그 동기와 행적을 규명하는 일이 급선무다. 고정간첩인지, 黃長燁(황장엽)파일 내사과정에서 생긴 도피사건인지, 아니면 북의 가족 때문인지 아직은 전혀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신한국당은 단박 오풍(吳風) 황풍(黃風)을 몰아 짓치고 나왔고 국민회의 또한 질세라 맞대응하고 나섰다. 색깔논쟁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확인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설(說)이 주무기다. 「만약에…사실이라면」식의 전제(前提)와 가정법을 써가며 마녀사냥하듯 서로 상대방을 고약하게 몰아가고 있다. 우선 공안당국은 말이 없는데 여당쪽에서 앞질러 야당총재내사설을 흘린 것도 그렇지만 당고문을 지낸 사람이 월북했다고 그 당 전체를 사상이 의심스러운 집단으로 몰아간다면 이런 논리의 비약도 없다. 국민회의도 그렇다. 아무리 다급했기로 공안당국의 「기획입북」 의혹제기는 너무 나갔다. 사실무근이라면 공연히 국가기관을 헐뜯은 꼴이 된다. 또 공안당국이 오씨를 밀파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여과없이 대공기밀을 그렇게 까발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어느 경우든 경솔했다. 안기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함이 옳다. 金大中(김대중)총재와 측근들에 대한 사상시비는 선거때마다 되풀이돼 온 해묵은 메뉴다. 그렇게 검증을 받고도 왜 또 나오는지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 볼 문제다. 상대방을 물고 뜯어 흠집내면 그게 다 자기쪽의 표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 모양이나 착각이다. 실제로 한차례 색깔공방이후의 여론조사결과는 주요 후보들의 지지도에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정적인 캠페인은 스스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혐오감과 정치허무주의만 유발할 뿐이다. 정치권은 오씨사건에 대한 공안당국의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색깔공방을 자제하는 것이 옳다. 그때 가서 구체적인 사실을 놓고 논쟁을 벌여도 늦지않다. ▼ 정책대결을 보고싶다 ▼ 선거때마다 상대방 흠집내기가 선거운동의 주(主)를 이루는 것은 정책대결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책대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우리 선거판에서는 도무지 그게 안된다. 정당간 정책에 차별성이 없고 천편일률적이라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결국 자극적인 방법으로 말초신경을 건드려서라도 표를 모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정책대결은 더욱 뒷전으로 밀려나는 악순환의 되풀이다. 이번에도 이런 행태가 그대로 반복된다면 허망하다. 어떻게든 정책대결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기업이 성공하려면 경영자가 비전을 잘 제시해야 한다고 경영학 교과서에 나와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국가장래에 대한 야심찬 비전을 놓고 큰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설과 바람의 대결로 상대방을 때려눕히겠다는 생각들 뿐이라면 이번 대선은 기대할 것이 없다. 남중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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