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두뇌」가 경쟁력

  • 입력 1997년 4월 24일 20시 27분


우리는 지금 르네상스나 산업혁명과 같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현재가 자본주의사회라면 미래는 지식의 내용 그리고 부와 명예를 결정짓는 지식사회다. 지금은 총 칼로 싸우지만 미래는 머리와 맨손으로 싸우는 시대다. 창조적 소수집단의 역할이 증대되고 머리로 승부하는 뇌력사회(腦力社會)인 것이다. 수천명, 수만명이 한 사람의 봉건영주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과거였다면 미래는 한 사람의 비범한 천재가 수만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 획일적 교육은 안된다 ▼ 이러한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직 앳된 얼굴의 컴퓨터 천재 빌 게이츠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세계 최고의 부호로 부상했다. 어디 그뿐이랴. 이탈리아 특급디자이너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계의 패션방향을 뒤바꾸어 놓기도 한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가들이 창조한 캐릭터 상품 하나가 우리나라가 자동차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의 몇배나 되는 수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영화 스타워즈는 20년이 지나 재개봉돼도 여전히 달러박스에 오른다. 앞으로 다가올 지식사회에서는 창조적 천재들이 역사를 발전시키고 세계를 이끌어 가게 될 것이다. 바둑 1급 실력을 갖춘 10명이 머리를 싸매고 함께 달려들어도 1단을 이기기 힘든 이치와 같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영재를 키우고 모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상을 보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교육만 하더라도 과거 산업사회를 지배해왔던 양적 논리에 얽매여 「획일적인 교육」을 통한 「평범한 인재」의 양산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이 무서워 우열반을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영재에 대한 무관심」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은 잠재력 있는 우수한 인재마저 거꾸로 2류로 만들어버린다. 청년기사 이창호는 비록 정규 대학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조훈현이라는 당대 최고수의 직접 지도를 받아 세계의 바둑계를 석권하고 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비뚤어진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거나 외톨이로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천재성이 꽃 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기업들과 직접 경쟁하고 있는 기업도 실상은 마찬가지다. 개성이 강하고 「끼」있는 사람을 「건방지다」 「말을 함부로 한다」하여 기를 죽이는가 하면 주위의 시기심과 「뒷다리 당기기」 때문에 우수인력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고인 물에서는 큰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잊히고 있다. ▼ 인재 키워주는 사회를 ▼ 또한 21세기에 과학선진국 기술선진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국적을 초월하여 전세계의 우수인재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전세계의 천재가 한 곳에 모여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는 두뇌천국을 만들어야 한다. 전화기부터 반도체까지 미국이 소프트, 하드웨어를 다 점령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이 나라가 세계 각국의 두뇌들이 모인 용광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스스로 인재를 키우고 아끼는데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인도 중국 러시아의 우수한 두뇌자원도 적극 활용하는 인재전략이 필요하다. 이건희(삼성그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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