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에세이/21세기 앞에서]기업의 「윈-윈」전략

  • 입력 1997년 4월 22일 20시 08분


바다거북은 산란기가 되면 바닷가로 올라와 5백개에서 많게는 1천개에 이르는 알을 낳는다. 어미 거북은 먼저 모래 속 깊이 구덩이를 판 다음 1백개 정도의 알을 무더기로 낳은 후 모래를 끌어모아 그 위를 덮는다. 이런 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알을 낳는다. 그런데 이렇게 무더기로 낳은 알에서 부화한 새끼거북들은 어떻게 모래웅덩이를 빠져나오는 것일까. 1백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뒤엉킨 상태에서 그 깊은 구덩이를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까. 동물학자들의 관찰 결과 새끼거북들은 역할분담과 협력을 통해 빠져나온다는 것이 밝혀졌다.그 좁은 구덩이에서 막 깨어난 새끼들 중 꼭대기에 있는 녀석들은 천장을 파내고 가운데에 있는 것들은 벽을 허물고 밑에 있는 새끼들은 떨어지는 모래를 밟아 다지면서 다 함께 모래 밖으로 기어 나오더라는 것이다. 또 실험을 하면서 알을 한 개씩 묻어 놓았더니 27%, 두개씩 묻어 놓았을 때에는 84%, 네개 이상을 묻어 놓으면 거의 100%가 알에서 깨어 구덩이 밖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이처럼 새끼 거북들은 협력을 통해 구덩이로부터의 대탈출에 성공한다. ▼반목-대립은 소모적▼ 오늘날 세계의 흐름 역시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 경쟁자에게도 내 것을 주고 협력함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사정을 돌아보면 우리는 아직도 좁은 테두리의 소모적 상쟁(相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이를 키워 나가기 보다는 얼마 되지도 않는 파이를 나누는데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고 있다. 원래 나눌 몫이 작다보면 피를 나눈 가족간에도 이기적인 갈등과 대립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직 우리는 파이를 더 크게 키우는 성장에 힘을 쏟아야 하는 단계에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양보하고 화합하는 상생(相生)의 길이 장래에 더 큰 몫을 가져다 주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기업경쟁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성장하고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지 경쟁기업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시장개방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다국적 기업들과 국내시장에서 일 대 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자칫하면 우리 기업의 상당수가 이런 도전에 언제든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공존하는 기업정신 필요▼ 이웃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11개의 대형회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만큼 우리보다 시장경쟁이 훨씬 치열한데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체가 진심으로 협력하고 있다. 대미 통상마찰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든지 환경관련 기술의 공동개발, 부품의 공용화와 협력업체의 공동이용 등 일본 자동차 업계의 협력은 잘 알려져 있다. 기업활동은 그 자체가 경쟁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이 경쟁을 하면서도 다 함께 공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역사의 흐름이나 사회발전의 흐름으로 보더라도 반목과 대립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완승하거나 완패하는 게임, 모든 것을 얻거나 잃어버리는 게임보다는 모두가 이기는 「윈―윈(Win―Win)」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오래 전부터 서로 힘을 합쳐 상부상조하는 「두레정신」이라는 좋은 전통이 있었다. 지금 이 시대, 우리 공동체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협력과 화합의 상생정신일 것이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이 때, 빠른 시일 내에 국민적 화합과 통합의 전기를 만들어가는데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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