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캐처가 되자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34분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승패의 70%는 투수에 달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투수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항상 쭈그리고 앉아 투구 하나하나를 리드하고 투수의 감정을 조절해가며 수비진 전체를 이끌어가는 포수가 없는 야구를 상상할 수 있는가. 비록 드러나지는 않지만 팀의 승패를 실제로 좌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 바로 포수인 것이다. 기업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빛나는 성공 뒤에는 항상 주목받지 못하는 그늘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포수 같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 묵묵히 자기역할 수행 ▼ 과거 기업에서는 「일하는데 머리만 있으면 되지 마음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차갑고 냉정하더라도 일만 똑부러지게 잘하면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부하들로부터 악명이 드높더라도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주어진 과제를 반드시 해내는 사람은 오히려 유능한 관리자로 평가받았다. 모든 평가가 업적과 능력에만 기준을 두고 상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해바라기형 관리자」를 양산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보화사회 지식사회에서는 휴먼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하다. 각자가 보유한 정보와 지식은 인간관계의 결속에 의해 합쳐질 때 훨씬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 차가운 사람보다는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함께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강점을 갖게 된다. 길을 가는데 어린아이가 넘어져 있으면 아무리 급해도 뛰어가서 일으켜 주는 마음, 남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의 기쁨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마음을 가진 훈훈하고 미더운 사람이 보다 요구되는 세상이다. 결국 인간미의 본질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에 있다. 「직장인으로서 성공의 80%는 지능지수가 아닌 감성지수(EQ:Emotional Quotient)에 의해 결정된다」는 최근의 연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조직생활에 있어서도 지식이나 학식 이전에 따뜻한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평가도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이 사람을 잘못 평가하게 되면 기업의 전 구성원이 평가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되고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는 등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포수와 같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많아지려면 자기 일보다 동료 일을 먼저 도와주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사람 평가기준 달라져야 ▼ 그러려면 평가기준을 인간미 도덕성 등 감성적 요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윗사람만의 단면평가 뿐만 아니라 반드시 동료 하급자의 평가까지 균형있게 고려하는 3백60도 다면평가의 개념을 하루 속히 적용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포수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포수처럼 그늘에 숨은 영웅이 대우 받고, 그들이 보람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는 기업, 국가가 바로 선진기업, 선진국인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