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 “메르스 사망자의 50배, 독감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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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2월 21일 14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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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비상’. 평년보다 2주 가량 빠르게 나타난 독감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된다.
‘독감 비상’. 평년보다 2주 가량 빠르게 나타난 독감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된다.


독감이 기승이다. 독감은 '독한 감기'가 아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감기와 독감은 원인부터 다른 완전히 다른 질환이다.

감기(common cold)는 라이노바이러스(rhinovirus),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등 200종이 넘는 다양한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는 코와 인후를 중심으로 하는 상기도 감염 질환이다.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대개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워낙 많아서 예방백신을 만들 수 없다.

반면 독감(인플루엔자(influenza) 또는 flu(플루))은 여러 바이러스 중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는 상기도 감염 질환이다. 증세는 감기와 비슷하지만 고열, 근육통, 피로, 두통 등의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감기와 달리 독감은 치사율이 높다.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에는 A, B, C형이 있고 백신을 만들 수 있다. 매년 맞는 독감 예방주사가 바로 그것이다.

2015년 대한민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로 인한 최종 사망자수는 38명이다. 그런데 매년 찾아오는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최대 2000명(기여사망자 포함)이 넘는다. 전 세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만 그렇다.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의 50배가 넘는 수치다.

그런데 메르스와 달리 독감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새로운 것이 아니고 언론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감은 지금 이 시간에도 조용히 누군가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2016년 12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독감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된다. 겨울이면 으레 반복되는 가벼운 유행성 질환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선 의사들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본다. 예년에 비해 2주 가량 일찍 시작된 데다 확산속도가 워낙 가파르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독감이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1918~1920년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인플루엔자A형 - H1N1)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만큼 사망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10만 명의 미군 중 4만4000여명이 스페인독감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이처럼 많았던 이유는 사람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섞이면서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바이러스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부분 조기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독성이 약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2009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도 돼지가 매개체가 된 독감으로 스페인독감과 같이 H1N1 바이러스의 변종이었다. (출처 : 라포르시안)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하트웰의원 원장.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하트웰의원 원장.

독감은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러나 TV를 켜면 거의 모든 방송에서 국정농단 관련 뉴스에, 청문회 광경의 중계에 여념이 없다. 반면 국민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독감 관련 뉴스와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에서 알려주지 않으니 국민도 무관심하고, 국민건강을 지키는 정부의 보건행정 담당자들도 거의 손을 놓은 듯하다.

이와는 반대로 2015년에는 TV를 켜면 메르스 소식 일색이었다. 2015년 여름은 언론에 의해 메르스 공포가 과장됐고, 2016년 겨울은 언론에 의해 독감의 위험성이 축소되고 있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우리나라에서 1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지난해 5000명 아래로 떨어졌다. 1988년 1만2000명이 넘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매년 2000명이 넘고, 독감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수가 많을 때는 2000명이 넘는 국가다.

대한민국은 국민생명의 보호가 최소한의 복지라는 점에서 볼 때 기본이 충족되지 않는 나라다. ‘아녀자’의 국정농단에 휘둘린 것은 정부 하나로 족하다. 언론과 온 국민이 대체 언제까지 휘둘려야 하는 것일까. 흥미꺼리는 뒤로 제쳐두고 이제 시급한 현안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에 언론이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닐까.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하트웰의원 원장
#독감#인플루엔자#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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