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탤런트 정보석, 병주고 약준 '젊은날의 초상'

  • 입력 2001년 2월 7일 18시 37분


나의 두번째 TV 출연작인 ‘젊은 날의 초상’은 햇병아리 시절 내게 상처와 교훈을 준 작품이다.

스물여섯살 때인 86년 KBS의 6·25특집극 ‘백마고지’로 데뷔한 후 나는 그 해 MBC 창사 특집극 ‘젊은날의 초상’의 주연 오디션에 응모했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500명이나 몰린 오디션에서 내가 뽑혔다. 기자회견도 했고 첫 주연을 맡게 된 기쁨에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자랑도 했다.

촬영 첫날, 나는 수시로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기 일쑤였고 동작이 작아야 할 때는 크게, 동작이 커야 할 때는 작게 했다. 정신없이 야단치던 김한영 PD는 나를 불러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배역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내가 원래 맡기로 되어 있던 주인공 ‘영훈’역은 나보다 선배가 대신 하길 바랬는데 그것마저 어린 후배 손창민에게 돌아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일이 너무 창피했다. 혼자 극장으로 가 어둠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부끄럽다고 연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김 PD를 다시 찾아갔다. “작은 역이라도 해보겠느냐”는 말씀에 “어떤 역이든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내 진심이었다.

김 PD는 폐병환자인 ‘황씨’역을 맡겨주셨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그 덕분인지 이후 PD들 눈에 띄어 ‘젊은 느티나무’ 등 드라마에 연속 캐스팅됐고 ‘스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젊은 날의 초상’은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었다.

90년 우연히 이 얘기를 들은 곽지균 감독이 “그런 아픔이 있었으니 오히려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젊은 날의 초상’을 영화로 해보자고 했다. 결국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은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됐고 4년만에 ‘되찾은’ 배역으로 나는 데뷔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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