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110억들여 4년 제작 ‘성냥팔이…’ 감독 장선우

  • 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35분


'인생 또한 수많은 선택을 해야하는 게임과 같다'고 말하는 장선우 감독.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인생 또한 수많은 선택을 해야하는 게임과 같다'고 말하는 장선우 감독.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나쁜 영화’ ‘거짓말’ 등 영화마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장선우 감독(50)이 이번에는 사상 최대 제작비(110억원)를 쏟아부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성소)’를 들고 돌아왔다. 제작기간 4년. 이 영화는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를 휴대전화로 접속하는 가상현실 컴퓨터 게임속에서 ‘부활’시켰다. “성소는 게임영화”라는 장감독을 서울 홍대 앞에서 만났다.

#LEVEL1: 몸풀기

P1:소감부터.

P2:처음으로 ‘10대 영화’를 공인받았다. 등급이 15세다. 미성년자가 볼 수 있는 영화를 내가 만들다니! 그것만 해도 목표의 반은 달성했다.

P1:컴퓨터 게임을 할 줄 아나.

P2:전혀. 게임과 형식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걸 해내 스스로가 대견하다. 게임 형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P1:예상관객수는?

P2:제작비는 건질 것이다. 400만명쯤?

#LEVEL2: 성소를 공격하라!

(인터뷰에 앞서 2시간8분짜리 성소 1차 편집본을 봤다. 극장 상영본에 비해 아직 마무리가 덜 됐다. 장감독은 이를 ‘불친절 버전’ 또는 ‘망하는 버전’이라고 불렀다.)

P1:영화속 게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P2:게임의 룰에 대한 설명을 보완중이다. 완성본인 ‘친절 버전’(혹은 ‘뜨는 버전’)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P1:임은경의 연기는 보여주는 게 없던데.(임은경 대사의 90%는 ‘라이터 사세요’다.)

P2:이미지 때문에 캐스팅했다. 솔직히 초반엔 연기가 미숙해 필름을 많이 버렸다. 나중엔 연기가 ‘업그레이드’ 됐다.

P1: 2시간이 넘는데 관객이 지루해 하지 않을까.

P2:최종본은 2시간에 맞춘다. 2시간을 1시간처럼 느끼게 해주겠다.

P1:충무로에 ‘한국 블록버스터의 3대 재난’이라는 말이 돈다. 8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예스터데이’ ‘아유레디’ 등 두 재난은 현실로 나타났고 이제는 ‘성소’라던데.

P2:한국 블록버스터들은 변별성이 없기 때문에 외면받는다. ‘성소’는 새로운 영화다.

P1:‘새로운 액션’이라고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본 듯하다.

P2:액션의 내용이 아니라 액션의 개념이 중요하다. 소녀가 바다위에 떠서 시스템의 상징인 나비를 향해 총을 쏘는 컨셉트는 ‘매트릭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 또 액션 외형이더라도 ‘매트릭스’와 같다면 이 역시 우리 현실에서는 대단한거 아닌가?

P1:예정된 제작비와 기간을 두 배 이상 초과했다. 감독 책임 아닌가.

P2:억울해서 외국 사례를 찾아봤다. ‘동사서독’도 몇 년씩 중단됐다 만든 영화고, ‘지옥의 묵시록’, ‘타이타닉’도 그랬다더라. 하지만 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LEVEL3: 성소의 의미를 찾아내라

(성소는 장자의 ‘호접몽’처럼 현실과 게임을 넘나든다.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님을 알 때 승자가 된다’는 화두같은 힌트도 나올 만큼 동양 철학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P1: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헷갈렸다.

P2:바로 그걸 의도했다. 가상 현실과 진짜 현실은 둘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런 걸 따지지 말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정신없이 영화를 ‘체험’했으면 좋겠다.

P1: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P2:보통 관객이 영화를 평가하나 ‘성소’는 영화가 관객을 평가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면 위너(Winner)라고 할 수 있고, 행복한 결말을 보면서도 슬픔을 느끼면 고수(高手)다. 중수는 영화가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두 번 보면 이해할 수 있다.(웃음) 하수?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

# LEVEL4: 에필로그

장감독은 조만간 시집을 낼 계획이다. “성소를 찍으면서 문득 시인이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정해놓은 시집 제목은 ‘이별에 관하여’.

누구 혹은 무엇과의 이별이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는 만들기만 하면 늘 욕만 먹고. 이젠 떠날려구” 했다. 하지만 정작 차기작 계획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만은 확실하다. (제작기간을) 짧게 만들 거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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