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처럼 인류는 원시 생물에서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왔을까. 아니면 신의 간단한 손놀림으로 빚어졌을까. 과학과 종교, 철학이 매달렸던 이 영원한 숙제에 일흔 살이 넘은 거장 감독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영국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6일 개봉)가 제시한 이정표는 뜻밖에 먼 우주의 어느 행성을 가리킨다. 2089년 과학자들은 고대 문명 벽화에서 공통으로 가리키는 별자리를 발견하고, 이곳의 지배자인 외계인이 유전공학으로 인류를 빚어냈다고 추측한다. 선장 비커스(샬리즈 시어런)가 이끄는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가 과학자 엘리자베스(누미 라파스), 피터(가이 피어스), 인조인간 데이비스(마이클 패스벤더)를 싣고 탐사를 떠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그럴 듯한 해답을 기대하는 관객은 영화를 본 뒤 거대한 물음표만을 돌려받을 것 같다. 스콧 감독이 밝혔듯이 영화 내용은 인류 기원에 관한 해답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예고된 대로 후속편에 가서야 그 온전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전개를 이어가지만 감독의 명성을 인정하는 관객이라면 후속편을 기다려 볼 만하다.
‘블레이드 러너’ 같은 철학적 물음을 담은 작품보다 ‘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등 끈적끈적한 생존 분투를 그렸던 감독의 전작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것도 같다. 이 영화는 ‘에이리언’의 ‘프리퀄(prequel·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지만 좁은 우주선에서 펼쳐지는 호러물이었던 전편의 긴박감을 계승하지 못했다. 주인공 라파스도 전편의 헤로인인 시고니 위버의 카리스마를 대체하기에 역부족이다. 라파스는 위버처럼 강인한 여성 전사를 그려내지만 에이리언과 ‘암컷 대 암컷’으로 사투를 벌이는 ‘비장미’가 없다. 인간과 묘한 감정싸움을 벌이는 비열한 표정의 인조인간 패스벤더의 연기에 더 눈이 간다.
아이슬란드 오지와 유럽 최대 규모인 영국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비주얼은 공들인 만큼 빛난다. 초반부 외계인의 몸이 녹아내리며 폭포에 빠지는 장면은 백미다. 아이맥스 등 큰 스크린으로 볼 것을 권한다.
영화는 폭력과 잔인한 장면 때문에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제작비 1억 달러(약 1170억 원)가 넘는 블록버스터에는 흥행의 먹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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