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연간 의료비 100조원,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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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의료의 핵심은 건강보험제도라 할 수 있다. ①가입 대상이 전 국민이고 보험 체계가 단일화되어 있으며 ②보장 범위와 서비스 품질이 세계 최고이고 ③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재정 확보와 통제 기능을 분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하지만 ①1차 의료기관을 정비해야 하고 ②본인부담(비급여)도 줄여야 하며 ③초고령화 시대를 위한 추가 재원 확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이 2016년부터 다시 적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했다. 보장 수준을 더 높여달라는 요구의 한편에 이대로 가다가는 다 망할지 모른다는 의료계의 걱정도 크다.

건보 개혁을 위해서는 각종 의료 통계 분석을 통해 우리 의료의 현주소를 먼저 알아보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다. 기준 연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통계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관련 데이터가 모두 들어간 가장 최근 통계치인 2011년 것을 썼다.

○ 선진국 비해 개인부담 높고 약값 더 쓰고


2011년 한 해 국민의료비(용어설명 참조)는 총 91조 원이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7.4%로 OECD 평균은 9.5%, 미국은 17.7%나 된다. GDP 대비 의료비가 선진국에 비해 낮은데도 한국 의료수준이 세계적이라는 점은 신기(?)한 일이다. 어떻든 선진국들은 GDP 대비 의료비 비중이 우리보다 높다.

국민 의료비 91조 원을 찬찬히 뜯어보면 크게 공공재원(정부 예산+사회보장기금 등) 50조 원과 민간 재원(민영보험+가계 직접부담+법정 본인부담) 41조 원으로 나뉜다. 필자조차 이번에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우리 의료비 대부분이 국민의 건강보험료로 충당되는 줄 알았는데 공공재원 비율이 절반이 넘는 50조 원(54.9%)에 이른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이 비율은 OECD 평균 77.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선진국에 비해 개인부담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간 1인당 쓴 의료비는 220만 원 정도였다. OECD 평균은 350만 원 정도이고 미국은 850만 원 정도이다. 220만 원 중 건강보험 재정 등 공공부문에서 충당한 액수는 120만 원(OECD는 250만 원), 개인부담은 100만 원(OECD 60만 원, 미국 100만 원)이었다.

1년에 1인당 약값은 얼마나 쓸까. 약 45만 원이었다. 액수로만 보면 OECD 평균 50만 원(미국 100만 원)에 비해 적지만 문제는 국민의료비 중 약가(藥價)가 차지하는 비율이 20.2%로 OECD 평균 16.1%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오남용 약, 버리는 약 등 약에 대한 낭비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세계 최고의 건강보험을 유지하려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 사진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장면. 동아일보DB
세계 최고의 건강보험을 유지하려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 사진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장면. 동아일보DB
○ 의사 간호사는 부족한데 장비는 많아

인구 1000명당 의사는 2.0명으로 OECD 평균 3.2명(미국 2.5명)보다 적었다. 간호사도 인구 1000명당 4.7명으로 OECD 평균 8.7명(미국은 8.6명)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간호대학이 배출하는 간호사 수는 연평균 94.9명으로 OECD 평균에 가까워 간호 인력들이 활용되지 않고 있음을 반영했다.

병상이나 장비 낭비도 심했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9.6개로 OECD 평균 5.0개(미국은 3.0개)보다 훨씬 많았으며 자기공명영상(MRI)장치 등 고가 장비를 이용한 검사 건수는 인구 1000명당 18회로 OECD 평균 30회보다 훨씬 적지만 보유 장비 수는 인구 100만 명당 21대로 OECD 평균 12대에 비해 과잉이었다.

암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94명으로 OECD 평균 215명보다 훨씬 적고 194명인 미국과 같았다.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는지 알 수 있는 입원일수도 6.8일로 OECD 평균(미국 5.4일)에 근접하고 있었다. 그만큼 효율적인 의료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방문 횟수가 13회로 OECD 평균 7회(미국 4회)의 거의 두 배에 달해 병원 문턱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 추가재원 확보 이전에 낭비요소 없애자

건강보험 재정을 늘리느냐 마느냐 논쟁하기에 앞서 의료비가 어디에 쓰이고, 낭비 요소는 없는지 따져보는 일이 합리적일 것 같다. 우선 한정된 의료비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감기처럼 약이 별로 필요 없는 경증 환자는 병원 이용을 자제하거나 개인부담으로 진료를 받고 의료비가 많이 필요한 급성 중증환자 치료에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법 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능력에 맞는 알뜰하고도 지침을 지키는 지출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지불능력이 있는 국민이 건보료를 내지 않거나 지불능력이 없는 자가 더 내는 모순도 없애야 한다.

건보 재원을 더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민의료를 복지 차원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 지역공공의료 시찰을 가본 경험이 있다. 구석진 동네까지 경로당 체육시설 재활시설을 노인을 위한 건강-복지 연계 시스템으로 묶어 복지인지 의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의료계도 할 일이 많다. 같은 질병을 병원마다 동일한 과정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표준의료지침’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또 인력 시설 장비가 기능별로 효율적으로 연계되고 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이 기능 분담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개혁은 어느 한 분야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환자, 정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는 환·의·정 협의체에서 함께 논의해 양보할 건 양보하고 주장할 건 주장해서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형 의료보장 제도를 만들어 낼 때이다.

:: 국민의료비 ::

병원, 간호, 주거 케어, 통원 서비
스를 포함해 보건행정, 사회보장
기금, 보험, 해외분 등 건강 관련 사업의 모든
공급 주체가 쓴 돈.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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