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환의 줄기세포이야기]암환자 세포속 '트로이목마'넣으면

  • 입력 2002년 4월 14일 17시 41분


그리스 신화에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가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한 계략으로 많은 병사를 속에 감춘 트로이 목마를 갖다 놓자, 위험한 줄도 모르고 트로이 병사들이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결국 트로이성이 함락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기발한 게릴라 전법이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정복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그것은 암 환자의 몸 속에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를 ‘목마’ 마냥 먼저 들여보내고 나중에 면역세포를 들여보내 암세포를 공격토록 하는 이른바 암의 면역치료 요법이다.

평상시 우리 몸은 암이 발생하면 면역 세포들이 이를 즉각 발견하고 조기에 퇴치하는 감시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암 환자에서는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암세포와의 싸움에서 기진맥진 지쳐 더 싸울 능력이 없게 된다.

이때 다른 사람의 싱싱한 면역구가 들어 오면 환자의 면역계를 도와줄 수 있겠지만, 거부 반응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골수체계의 일부 만을 약간의 항암제로 살짝 파괴시키고 난 뒤 타인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이들이 트로이 목마 구실을 하게 된다.

즉, 이 줄기세포들은 처음에는 경계대상이 아니므로 환자의 몸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이식된 줄기세포들은 혈액 뿐만 아니라 면역계도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세포이다. 이들은 곧 자신의 후예를 만들어 내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암 환자의 몸 속에 터를 잡아서 곧 들어올 지원군들, 즉 공여자의 면역세표인 림프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는다.

이렇게 해서 몸 속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타인의 림프구는 닥치는 대로 암세포들을 공격하여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미국 프레드허친슨 연구소의 라이너 스토브 교수 등에 의해 90년대 중반 처음 개발된 이러한 방법은 일명 ‘미니 이식’이라고 불린다. 이를 만성골수성 백혈병에 처음 사용해본 연구진들은 인간이 개발해 낸 어떠한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에 못지않은 강력한 치료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치료법은 곧 백혈병 이외의 다른 암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립보건원의 리처드 챠일즈 박사팀은 전이성 신장암 환자에게 이 방법을 시도했다. 신장암은 항암제도 듣지않고 일단 전이가 일어나면 생존기간이 1년 이하밖에 되지 않는 무서운 암이다.

챠일즈 박사팀이 1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절반이 넘는 환자가 치료를 받고 나서 1∼3년이 넘도록 살아 남았고 일부는 완전치료 소견까지도 보였다.

그토록 무서운 암에 대해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치료효과를 거둔 것은 뜻밖에도 우리몸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면역세포와 줄기세포의 협공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치유 능력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사뭇 새겨볼 만한 일이다.

가톨릭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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