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로 가는길]"소비자에 감동을" CRM 마케팅 뜬다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40분


회사원 김모씨(37)는 최근 부인 생일을 앞두고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 한 음반판매 회사가 E메일을 통해 추천한 오페라 입장권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가 김씨의 부인 생일과 그 날 저녁에 열리는 음악회를 알아내고 입장권을 할인 가격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김씨 부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저장해두었다가 김씨의 E메일 주소와 함께 부인에 대한 자료를 마케팅 부서에 보내는 고객관계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프로그램을 올해 도입했다.

김씨가 음반을 사면서 적은 가족에 관한 데이터를 갖고 있는 이 회사는 김씨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 맞추어 동화책을 감사의 선물로 보내는 ‘고객 감동 프로그램’을 별도로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의 DB에는 김씨가 최근까지 구입한 음반 목록과 회사가 보낸 E메일이 모두 저장돼 있다.

고객에 대한 심층적이고 광범위한 지식을 바탕으로 개인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CRM이다.

CRM은 인터넷의 확산으로 기업이 고객과 간접적으로 접촉하는 기회가 늘어나고 고객의 구매 패턴이 변하면서 e비즈니스를 서두르는 기업의 화두가 되고 있다.

▽시장이 변하면 마케팅도 달라진다〓CRM은 대량 생산시대였던 70년대의 대중 마케팅(Mass Maketing) 및 80년대 틈새 마케팅(Niche Mar―keting)과 구분되는 기업 판매 전략이다.

대량생산 시대에는 소비자에 대한 관심과 욕구는 생각하지 않고 상품을 만들기만 해도 팔렸으며 다른 기업이 지나치고 있는 틈새를 공략해도 수익을 크게 올렸다.

하지만 인터넷의 확산으로 소비자가 기업 정보에 쉽게 접하고 직접 생산의 일부에 참가하는 프로슈머(Prosumer)의 역할을 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일방적인 의사 소통채널로 소비자와의 일시적인 접촉을 통해 판매 증대만을 꾀하는 종전의 마케팅 방식은 더 이상 기업의 수익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 델라웨어 소매금융 기관인 윌밍턴세이빙펀드(WSFS)는 93년 경쟁사가 고객 밀착 경영에 힘쓰는데도 대출이자율 인하 등 가격중심의 마케팅에 매달리다가 예금잔고가 3년전 11억달러에서 6억달러로 줄었다.

이 회사는 누적 점수제와 우수고객 보상 등 CRM 프로그램을 가동한 지 6개월 만에 고객 1만5000명의 예금잔고를 2100만달러 이상 늘렸다. 이 프로그램 시행 전년도의 예금잔고 감소액은 1900만달러였다.

CRM은 또 기업이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고객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종전의 마케팅 개념과 다르다. 소비자의 일회성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무차별적인 마케팅 기법은 점차 기반을 잃고 DB분석에 따른 우량 고객 선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

▽데이터를 움직이게 만든다〓정보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이 고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와 고객의 데이터를 축적할 기회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창구에서 수집된 고객 데이터를 한 군데로 모아 고객 중심으로 재편한 뒤 이를 활용하는 것이 CRM의 주요 과제.

99년까지 항공권 판매 수수료 감소와 인터넷 여행사의 등장으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아이트래블(iTRAVEL)사는 고객 데이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지난해 수익 구조를 크게 개선했다. 이 회사가 18개월간 500만달러를 들여 고객정보관리 시스템과 고객지원센터의 DB를 고객 위주로 바꾸자 이 회사의 사이트를 이용해 항공권을 이용하는 고객수는 4배 이상 늘었다. 또 이같은 시스템을 갖춘 뒤부터 항공권 한 장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전화 통화수의 3분의 2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객 데이터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이 축적되는데도 이를 마케팅에서 활용하거나 고객 만족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기업은 정작 소수에 불과하다고 인터넷 조사기관인 사이버다이얼로그는 밝히고 있다.

수주시스템의 고객정보와 물류시스템 및 콜센터 시스템의 고객 정보를 한 군데에서 통합해 마케팅 부서에서 활용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는 것. 포레스터리서치에 따르면 고객 정보를 사내 모든 부서가 공유하는 기업은 10%에 불과하다.

CRM을 수익 모델로 활용하고 있는 아마존닷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고객이 450만명이라면 서점 하나로 부족하다. 서점 역시 개별 고객에 따라 450만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식경영이 필수〓앤더슨컨설팅은 “CRM시행에서 기술적 문제의 비중은 5%에 불과하고 업무 흐름의 개선과 지식경영이 시스템 도입의 전제가 된다”고 밝혔다.

미국의 CRM컨설팅 업체인 ISM은 전사적인 합의 없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CRM을 도입했다가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돈만 쏟아부은 실패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의 특성도 고려해야할 요소. CRM은 고객 DB를 수집하기 쉬운 금융 통신 등의 분야에서 먼저 도입됐다. LG―EDS의 홍성완 CRM그룹장은 “대리점을 갖고 있는 제조업체의 경우 고객 DB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험을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하든가 거래처를 대상으로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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