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35년… 재정위기 해법 없나]<上>빨간 불 켜진 건강보험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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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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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10배 더 내도 2060년 86조 적자… 세금으로 메워야

《 국민건강보험의 전신인 의료보험은 1977년 7월 시작됐다. 출범 직후에는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로부터 35년. 건강보험 가입자는 첫해 320만 명(전체 인구의 8.8%)에서 지난해 4930만 명(96.8%)으로 늘었다. 사실상 전 국민 보험인 셈이다.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진료도 꾸준히 늘었다. 혜택이 늘어난 만큼 재정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의 해법을 상하 시리즈로 모색해 본다. 》
직장인 신모 씨(35)는 지난해 A종합병원에서 고혈압과 만성신부전증 입원 치료를 받았다. B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았고 C약국에서는 고가의 전문의약품을 구입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1년간 신 씨에게 청구된 진료비와 약값은 모두 2200만 원. 그는 300만 원만 냈다.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의료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지 7월로 35년. 의료 혜택은 크게 늘었다. 병원 문턱이 낮아지니 신 씨 같은 사례는 흔해졌다. 모든 암 환자는 진료비의 5%만 내면 된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 건강보험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1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국회 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장기재정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올해 5조4000억 원에서 2020년 11조8000억 원, 2040년 49조2000억 원, 2060년 86조3000억 원으로 15배나 급증한다. 48년 후에는 정부가 86조 원을 지원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전망도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을 올해 5.8%에서 2060년 13%로 2배 이상으로 올려야 가능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2060년에는 모든 직장인이 연간 2231만 원(회사 부담액 포함)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물가상승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979만 원. 올해의 경우 206만 원이므로 단순 액수로는 10배를 더 내야 한다.

보험료율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 어떻게 될까. 국고지원금은 2020년 28조9000억 원, 2040년 176조7000억 원, 2060년에는 325조5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모두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전문가들이 건강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는 이유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건보 재정의 위기는 더 심해지고 재정 파탄의 위험성도 훨씬 높아진다.

무릎관절 환자인 전모 씨(65·여)는 동네 의원에 갈 때 한결 마음이 가볍다. 지난해까지는 물리치료를 받을 때마다 진료비의 30% 정도를 냈는데, 65세가 되니 1500원만 낸다. 만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에서 1만5000원 이하의 치료를 받으면 1500원만 받기 때문이다.

이런 노인 환자들이 늘면서 건보 재정도 더 빨리 축난다. 보통 노인 진료비로 나가는 재정은 30대의 4배에 이른다.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1990년 2403억 원에서 2011년에는 15조4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60세 이상 인구는 올해 722만 명(전체 인구의 14.6%)에서 2060년에는 1846만 명(전체 인구의 42.4%)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기본적으로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 등 인구 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고령의 만성질환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양식 식생활과 운동 부족도 건보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비만과 고혈압, 당뇨를 유발할 뿐 아니라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 등 중증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화에 만성중증질환자 증가 현상까지 겹쳐 재정 악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일부 국가들은 1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으로 건강보험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전략을 짠다. 우리도 재정을 포함해 건강보험의 장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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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건강에 기여한 건보

진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 가기가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건강보험이 생기면서 병원 문턱은 크게 낮아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병·의원 방문일(연간)은 1990년 7.9일에서 2011년 18.8일로 1.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입원일은 0.6일에서 2.2일, 외래진료는 7.3일에서 16.6일로 각각 1.3배가 증가했다.

건강보험 진료가 보편화하면서 병·의원 역시 늘었다. 1980년 1만3316곳에서 2011년 8만2948곳으로 5배 증가했다. 유형별로는 동네 의원이 1만170곳에서 5만5296곳으로, 병원이 341곳에서 3065곳으로 증가했다.

의료접근성이 좋아지자 국민의 건강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영아 출생 1000명당 사망자는 1980년 17.0명에서 2010년 3.2명으로 뚝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3명)보다 낮다.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996∼2000년 44%에서 2005∼2009년 62%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영향으로 국민의 평균수명이 늘었다. 1980년 65.9세에서 2010년 80.7세가 됐다. 한국인의 수명이 해마다 5, 6개월 연장된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980년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처음 실시했다. 건강검진 대상은 1995년에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 국가 암 검진 체계는 2005년에 처음 생겼다. 위, 유방, 간, 대장부터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영유아 건강검진이 무료다.

건강보험의 혜택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위기만 잘 극복한다면 말이다. 관건은 재정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건강보험#재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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