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27…낙원에서(5)

  • 입력 2003년 9월 28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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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징발하고는 집을 태워 통구이를 한 적도 있었어. 중대장이 여기는 항일분자 집이니까 불질러 버리라고 명령해서 안에 들어가 봤더니 하얀 벽에, 철저항전, 타도일제, 동양귀(東洋鬼)라고 쓰여 있는 거야. 그게 또 얼마나 달필인지, 담력이 넘치고 정말 감탄할 만한 필체더라고. 집에 불을 질러보기는 처음이라서 잔뜩 긴장은 했지만, 돼지가 다 익을 때까지 다들 몸도 녹이고, 그 날이 제일 즐거웠어. 빙 둘러앉아 먹을 때도 불기가 남아 있어서 따뜻하고, 돼지도 맛있었고, 그리고 그 다음에 핀 담배가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그런데 유독 그런 밤에 습격을 한다니까, 창콜로는. 실컷 먹고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핑 핑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가고, 피슝 피슝하고 습지에 총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몇 명이 총알에 맞아 꺄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응사하랏! 발사! 3시 방향! 소대장이 명령하는데 수류탄이 펑 펑 터지는 소리에 잘 들리지도 않았어. 중국 사람들은 수류탄을 대나무로 만드니까, 얼마든지 만들 수 있거든. 펑! 펑! 펑! 끝없이 날아오는 거야. 그러다 B29까지 합세해서,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우리는 수류탄도 없고 칼에다 총이라고는 다섯 명에 한 자루밖에 없으니. 전투 경험도 없는 철부지 소년병들은 ‘엄마, 엄마’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면서 서로를 껴안고 부들부들 떨고. 얼마나 전투가 격렬했는지, 총신이 금방 뜨거워지고 물통도 뜨거워서 들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

다음 날 아침, 소년병들 분대장한테 혼쭐이 났지, 따귀 찰싹 찰싹, 적당히 때리면 소대장한테 얻어맞으니까,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있는 힘을 다 해 때리는 거야.

도망치다 잡힌 창콜로를 데려다 놓고 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웠다는 야마다 소위가 심문을 했는데, 중대장이 잡은 사람더러 죽이라고 명령하는 거야. 총알 아끼라면서 칼로 찌르라고 말이야. 전투 중에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니까 죽일 수도 있지만, 꼼짝않고 붙들려 있는 상대를 어떻게 찔러. 그랬더니 그 창콜로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옷자락을 탁 탁 걷어차듯 몇 걸음 걷더니, 찌르기 쉬운 자리에 떡하니 서는 거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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