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33>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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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신을 얘기하려면 먼저 그를 알아야 한다. 너는 한신을 아느냐?”

“예, 관포지교(管鮑之交)랄 것까지는 아니 되나 그를 잘 압니다.”

그런 무섭의 대답에 패왕이 다시 물었다.

“한신과 동향이냐?”

“저는 우이(우이)에서 나고 자랐지만 젊은 시절 한때를 회음(淮陰)에서 보낸 바 있습니다. 그때 회음 저잣거리에서 한신과 사귄 적이 있습니다.”

무섭이 별로 내세우는 기색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 꿋꿋한 자세나 차분한 어조가 허튼 수작을 부리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패왕이 한층 눅어든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봤자 한신은 칼을 차고도 백정놈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간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한신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것입니다. 한신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장은 아무리 욕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때 한신이 얻고자 했던 바는 하찮은 인간을 베어 살인자로 쫓기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남아 장부의 큰 뜻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한신은 그걸 이루기 위해 서슴없이 저잣거리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갔고, 크게 공업(功業)을 이뤄 마침내는 제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한신의 그와 같은 기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는 세상의 이목이나 사람들의 비웃음 따위는 전혀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됐다는 것이냐?”

아직도 무섭이 자신에게 하려는 말이 뚜렷하게 잡혀 오지 않아 패왕이 다시 그렇게 물었다.

“지금 한신은 한왕의 명을 받들어 조(趙) 연(燕) 제(齊)를 잇달아 쳐부수고 이제는 제왕이 되어 우리 서초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하오나 만약 대왕께서 한신이 원하는 것을 주실 수 있다면, 오히려 대왕께서 그를 손발처럼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신은 옛정을 내세우고 한신을 찾아가 대왕을 위해 그를 달래 보고자 합니다.”

“과인이 무엇을 주면 한신이 내 사람이 되겠느냐?”

“대왕께서 천하의 셋 중에 하나를 한신에게 주신다고 하면 한신도 대왕을 위해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알 수 없는 기대로 무섭의 말을 듣고 있던 패왕 항우가 갑자기 버럭 소리치며 꾸짖었다.

“무어라? 남의 빨래를 해 주고 그 삯으로 겨우 먹고사는 아낙에게서까지 밥을 빌어먹던 그 겁쟁이놈에게 천하의 삼분지 일을 내주라고? 지금 네놈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그래도 무섭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가만히 패왕을 올려보며 해온 말투 그대로 일깨워 주듯 말했다.

“대왕의 천하를 보존하기 위한 길인데 아니 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한신은 이미 천하의 셋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패왕이 다시 거센 숨을 고르며 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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