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41)

  • 입력 2000년 2월 8일 15시 46분


여행 잊지 않겠소, 다스비다니아

그것은 불이 붙은 나뭇가지처럼 차츰 주위로 번져가면서 띠의 폭이 넓어져 거대한 천처럼 펼쳐지고 해가 발갛게 작열하면서 뚝뚝 떨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강물도 붉게 물들었고 가까운 곳의 남색은 짙어지고 멀리 나아갈수록 바래어 가다가 하늘의 짙은 빨강과 만나면서 경계가 없어져 버렸어요.

또 해가 지는구나.

라고 그가 중얼거린 것 같았어요. 나는 곁에 서서 강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이젠 좀 괜찮니?

뭐가….

속이 아프다구 그랬잖아.

음 배가 고플 지경인데. 하여튼 고마워.

나는 그를 말없이 쳐다보았어요. 송영태는 내가 늘 알고 있던 예의 그 묵직하게 내리깐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요.

이 여행에 한 형이 동행해 주어서… 정말 좋았어.

나두 좋아.

나는 이러한 말 몇 마디로 분위기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유람이 끝나 선착장에 내려서 모두 흩어질 때에 우리는 버스로 오면서 보아두었던 중국 레스토랑으로 갔어요. 접시 넷을 시켜서 오랜만에 밥을 먹고 나와 카페에 갔는데 그가 거기서 없어진 거예요. 그는 커피를 시켜 놓고는 화장실에 가듯이 슬그머니 일어서서 나갔어요. 나는 차를 마시고도 한참이나 기다리다가 그가 돌아오지 않아서 아마 또 뭔가 삐쳐서 호텔로 돌아갔겠거니 여기고는 일부러 칵테일을 시켜 놓고 앉아서 실내악단의 연주를 들었지요. 아니 오히려 누군가와 일주일 이상을 어쩔 수 없이 함께 붙어 다니다가 혼자가 되니까 홀가분하고 갑자기 자유스럽게 느껴졌어요. 에그 시원해라, 하는 느낌이었죠. 또 설령 내가 함께 붙어있었다 할지라도 그를 막을 수가 있었을까요. 두 시간쯤 지나서 나는 가로수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어요.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짐이며 걸려 있던 옷들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죠. 나는 어쩐지 그때에도 침착했습니다. 두리번거리는데 경대 거울 위에 세워 둔 메모 종이 한 장을 발견했어요. 볼펜으로 휘갈겨 쓴 그의 글은 이랬어요.

오자마자 찢어지려고 했는데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한형, 나는 돌아올 수 없는 두메 산골로 떠납니다. 그곳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구석진 장소가 될 거요. 무력하게 가만 있을 수도… 그렇다고 자살할 수도 없지 않겠어요? 여행 잊지 않겠소. 다스비다니아!

그의 이 엉뚱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이튿날 오전에 안내자에게 가서 우리가 여기서 여행을 끝낸다고 말하고는 그냥 호텔에서 하루 더 묵었습니다. 그는 역시 돌아오지 않았죠. 온 하루를 낯선 도시에서 나 혼자 오롯이 보내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행선지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그가 지난 며칠 동안 시베리아 평원을 달려오며 흥얼거리던 노래 몇 구절을 기억하구 있어요.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좋아해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