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40)

  • 입력 2000년 2월 2일 19시 10분


넌 너 밖에 몰라. 그림두 개떡 같고.

너는 잘난줄 아니? 맨날 주둥이만 나불대구말야. 엄살 떨지 말구 콱 저질러 버리든지, 아니면 다 그만두구 한 가지라두 열심히 해보지 그래.

내 말에 송영태가 고개를 돌리면서 픽 웃는 시늉을 했어요.

넌 구제불능이야.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잖아. 저 자신까지두….

나는 눈물이 철철 흘러 내렸습니다. 아마 주정이 반쯤은 섞였을 거예요. 나는 울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처절한 느낌이거나 소리를 내기까지 한 건 아니었어요. 그에게 사정없이 들이댔죠.

나쁜 자식, 다 알구 있었잖아. 미경이에게 어떻게 대했는데?

그땐 그런 시대였어.

영태가 중얼거렸고 나는 소리를 질렀지요.

저 잘못한 생각은 않고… 시절 탓하지 마라!

그가 갑자기 입을 기묘하게 비틀더니 비죽비죽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조용히… 사라지면… 될 거 아냐.

갑자기 더 밉살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나는 내 침대 위로 올라가 커튼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차 바퀴가 레일에 걸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지요.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걸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일까. 나는 아마 깜빡 잠이 들었던가 봐요. 커튼이 슬그머니 열렸어요. 칸막이 안은 불이 꺼져 있었지만 바로 머리 위에 영태의 거뭇한 상반신이 있는 게 보였죠. 그가 머리를 숙이더니 내 뺨에 입술을 댔어요. 어떻게 할까 순간적으로 복잡한 생각이 엉클어지는데 그가 얼른 물러서더니 다시 커튼이 닫혔습니다. 나는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어요. 다시 바퀴가 끊임없이 레일에 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바로프스크에 들어설 때에 아무르 강 위로 첫눈이 희끗희끗 날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여름 날의 여우비처럼 해가 부옇게 떠 있는데도 눈발이 날리는 거예요. 레닌 광장 근처에서 여장을 풀었는데 거기가 마지막 숙박지였지요. 이튿날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단체관광의 여정이 다 끝날 테니까요. 로비에서 아무르 강의 유람선 관광객을 접수하고 있었어요. 우리들 일행의 일정에도 일몰의 강변 유람이 잡혀 있었거든요. 영태는 얼굴이 푸석푸석하게 부어 있었고 아침부터 시종 말이 없었지요. 호텔에서는 광장과 그 앞으로 곧게 뚫린 칼 마르크스 대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호텔 현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대로의 북쪽 끝에 있는 선착장으로 갔어요. 해가 제법 많이 기울었지만 아직은 하얀 햇빛이 붉은 색으로 짙어지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었습니다. 일층은 카페테리아였고 이층이 갑판이었는데 모두들 갑판으로 올라가기 마련이었어요. 우리는 관광객들 틈에 끼어 배의 우현 쪽 난간에 기대어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어요. 멀리 아득하게 중국 국경의 거뭇거뭇한 산과 숲이 보였지요. 아무르 강을 그쪽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흑룡강이라고 부르지요. 이 장대한 강은 거의 동시베리아 대륙 전체를 감돌아 흘러서 사할린스크 북쪽 연안의 오호츠크 해로 빠져 나가요. 유람선은 강 가운데로 천천히 항행하여 하바로프스크 철교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데 한 시간 반쯤 걸린다고 해요. 해가 강 건너편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하늘에 붉고 노란 띠가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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