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99)

  • 입력 1999년 12월 16일 19시 28분


그는 나에게 식탁을 가리켰습니다.

거기 앉으시오. 오늘 메뉴는…참, 양고기 먹어 봤어요?

그럼요, 향료와 양념을 많이 쳐야할텐데.

이 선생이 먼저 차게 해둔 모젤 와인을 따고는 잔에 따라서 내게 내밀었어요.

요리가 다 될 때까지 입가심이나 하시오.

나는 차거운 잔을 입술에 대고 한 모금씩 베어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잔을 들고 방 안을 서성대면서 둘러보다가 미륵의 반가사유상을 찍은 흑백 사진의 액자가 걸린 걸 바라보고 또 창가에 놓인 한 뼘 크기의 동불상도 들여다 보았어요. 또 화장실 문 옆에는 조각 융단이 걸려 있었는데 비쩍 마르고 길다란 불상이 수놓인 것이었어요.

부처님이 여러분 계시네요.

그랬더니 그가 설명을 했어요.

어, 나는 그 동네 좋아해요. 저건 비행기에서 홍보용으로 나오는 잡지에서 오린 거예요. 동불상은 내가 올 때 책 짐 속에다 넣어 가지구 온 거요. 그 양탄자는 우리 연구소 친구 마틴이 선물했구요.

그는 꼬치에 꿴 고기며 피망이며 가지며 양파 등속을 접시 위에 담아서 식탁에 냈어요. 호밀빵 바구니도 올려 놓았고 와인도 한 병 더 내왔어요.

모양은 근사한데요.

친구한테 배운 거요.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햄과 멜론을 곁들인 스페인 풍의 전채도 맛있었구요.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쌉싸름한 맛이 감도는 트로켄 류의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데 이 선생이 한 장의 잎을 돌돌 말아서 가느다란 실로 묶은 원뿔 모양의 담배를 주었어요. 한 모금 빠니까 연기가 좀 독하기는 했지만 향긋하고 구수한 원래의 풀잎 냄새가 나서 쌉쌀한 술 맛과 잘 어울렸지요.

이거 담배 맞죠?

터어키 상점에서 팔아요. 파키스탄 거라구 그러든데.

씨가보다 훨씬 토속적인데요.

이런 광경이 영화 장면에라두 보이면 나는 귀 밑에 소름이 돋아서 딴청을 부릴걸. 생각해 보며 그것두 과장이었어요. 시시한 멋 좀 부린들 어때. 내일이면 모든 조명과 장치를 삼켜버리는 백주의 태양이 뜰 텐데.

저 동네가 왜 좋죠?

나는 잎담배로 벽에 걸린 부처님을 지시했어요.

중생일체란 소리가 근사하고 폭력이 없잖소.

세계를 단순히 해석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에요.

그걸 누가 해석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사는 동안의 생을 통해서 계절에 의미를 붙이고 그러지요. 세상은 그 누구와 상관없이 저 혼자 있는 거요.

세계를 변화 시켜야죠.

나는 내 친구들의 말투로 그에게 얘기했어요. 조용한 그가 눈을 크게 뜨고 어딘가 분개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지요.

변화? 무엇을 위한 변화. 잔물결 같은 거요. 매개 사람의 일생은 아주 짧아요. 왜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지. 저 동네에서는 언뜻 보면 대단히 물질적으로 대응하고 있소. 명상을 통해서 욕망을 절제하고 자기를 무화 시키는데 도달하면 겸허하게 없어져 버려요. 다시 나타난다거나 자기 뒤에 어떤 세상이 남겨진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저 동네 말로 윤회의 그물에서 영원히 빠진다는 거지. 세상에 대한 존재 방식이지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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