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강경의 갑문과 젓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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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과 강경천이 만나는 곳에 1924년 건축된 강경갑문.
금강과 강경천이 만나는 곳에 1924년 건축된 강경갑문.
 명란젓 새우젓 조개젓 낙지젓 갈치속젓 아가미젓 창난젓 황석어젓 꼴뚜기젓 밴댕이젓 토하젓…. 충남 논산의 강경 포구에 가면 지천이 젓갈이다. 이곳에서 식사 때 나오는 조기도 염장(鹽藏)한 것이다.

 젓갈의 고장, 강경. 예로부터 강경 포구엔 서해 밀물이 금강을 따라 내륙으로 깊숙이 밀려 올라오고 이를 따라 각종 해산물과 교역물이 들어왔다. 해산물들은 전국 곳곳으로 공급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포구는 번성했다. 1920, 30년대는 강경의 전성기였다. 이후 50년 가까이 성어기에는 하루 100여 척의 배가 포구에 들어와 산더미처럼 생선을 쏟아냈다. 매일 2만여 명씩 상인이 몰렸다. 그 덕분에 강경은 광복 전후까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혔다.

 그 핵심은 젓갈이다. 팔고 남은 생선을 오랫동안 보관해야 했고 자연스레 염장법과 수산가공법이 발달했다. 강경 젓갈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강경 젓갈시장 바로 옆, 금강과 강경천이 만나는 곳엔 갑문(閘門)이 있다. 강경갑문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4년에 생겼다. 당시 갑문이 있는 곳은 강경과 인천뿐이었다. 갑문을 통해 강경읍내 한복판까지 해산물을 실은 배가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 젓갈시장이 형성되었다. 갑문이 젓갈시장의 번성에 한몫 단단히 한 것이다. 강경 포구가 성시를 누리던 시절, 강경갑문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990년 금강하굿둑이 생기면서 물길이 막혔다.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고 갑문은 기능을 상실했다

 사실, 근대유산으로 치면 강경만 한 곳도 드물다. 젓갈시장 주변엔 근대유산들이 즐비하다. 한때 젓갈 창고로 사용되었던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1913년), 포구 노동자들의 근거지였던 옛 강경노동조합(1925년)을 비롯해 옛 연수당 한약방, 옛 강경상고 교장 관사, 중앙초등학교 강당, 옛 강경성결교회 등. 모두 젓갈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 강경을 찾았을 때 젓갈시장은 다소 한산했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 발효젓갈축제가 열리고 김장철이 되면 시장은 북적일 것이다. 지금도 120여 곳의 젓갈 상점이 영업 중이다.

 젓갈은 여전히 강경의 상징이고 우리의 일상이다. 그렇기에 그 역사와 흔적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강경의 젓갈, 젓갈시장, 근대유산을 유기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깊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강경 갑문#젓갈의 고장#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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