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살다]작은 한옥서 누리는 즐거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도시형 한옥의 내부를 수리한 모습.
도시형 한옥의 내부를 수리한 모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30대 중반의 현주 씨 부부는 지은 지 40년 넘은 작은 한옥을 구입했다. 대지 약 79m²(약 23평), 건평 약 40m²(약 12평)이니 요즘 보통의 살림집 기준으로는 아주 작은 축에 들어간다. 꼭 필요한 곳만 손보면서 살아 온 집이어서 상태도 좋지 않았거니와, 20년만 지나면 재건축 운운하는 요즘 추세대로라면 헐고 새로 지었을 법하다. 그러나 이 부부는 이 집을 재활용(!)하기로 했다. 한옥의 틀은 살리고 벽체며 내부 공간의 구성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다.

집수리의 핵심은, 한옥의 정취는 살리면서 내부는 편리하게 하는 것. 오래된 집이니 구조 보강과 단열은 필수였다. 기둥과 보, 서까래를 적절히 드러내니 정취는 저절로 살아났고, 작은 집을 편리하고 넓게 쓰기 위해 주방 디자인에 정성을 들였다. 싱크대를 오픈형으로 디자인하고 거실과 연결해 배치함으로써 공간 활용도를 넓히고 수납공간 확보에도 신경을 썼다.

30대 중반이라면 어려서부터 아파트에 익숙한 세대다. 현주 씨 역시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 그런데 왜 이런 획기적인 선택을 했을까.

“집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꽉 막힌 아파트에 사는 게 너무 답답했고 작아도 나만의 개성 있는 공간에 살고 싶었어요. 그리고 한옥만이 가진 조형미가 너무 좋았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 좁은 골목에서 여러 집이 부대끼고 사는 일이 적응하기에 어렵지는 않았을까.

“문만 닫으면 외부와 단절되는 아파트에서도 보안시스템을 설치하고 살았기 때문에 단독주택에서는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이사 오니, 아침에 이웃집 아저씨의 기침소리며 골목 쓰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들 문 열어 놓고 지내는 모습을 보며 굳이 설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무장이 해제되는 느낌이랄까.”

집이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현주 씨는 거기에 덧붙인다. 앞으로 아기가 태어나도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마당에서 마음껏 놀 수 있으니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모른다고. 또 짐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수납공간을 많이 설치해서 그런지 좁은 집에 그 많은 짐이 다 들어갔다고.

서울 마포구에 있는 현주 씨 집은 1970년 무렵 건축업자가 분양한 한옥으로, 크기며 평면이 똑같은 한옥들이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아직도 도심 곳곳에는 큰길에서 한 켜만 들어가면 낡은 한옥들이 골목을 이룬 곳이 남아 있다. 이른바 도시형 한옥이다.

도시형 한옥의 출현은 1920년대부터다. 근대화 산업화와 더불어 발생한 인구의 도시 집중 때문에 대도시에는 주택이 부족해졌고, 이런 문제의 틈새에 주택공급업자가 등장하여 어우러진 결과다. 작은 땅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지혜도 다양했다. 앞집 담장이 내 집 벽체가 되도록 붙여서 지었고,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꼭 있게 마련이던 문간방은 농촌에서 상경한 일가족이 세 들어 사는 터전이요, 집주인에게는 임대수입을 올릴 자원이었다.

이처럼 도시형 한옥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귀한 자산이다. 그러나 한옥 붐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한옥의 신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다른 한편으로 오래된 한옥들이 ‘노후불량주택’으로 분류돼 재개발 사업으로 빠르게 멸실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주 씨는 작은 한옥을 재활용해 살면서 많은 즐거움을 되찾았다. 편안한 공간, 개성과 취향, 조형미, 마당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

이 외에 현주 씨가 되찾게 된 소중한 가치들은 더 있다. 오래된 한옥을 재활용함으로써 건축폐기물 발생을 줄여 환경에 기여하고 노후불량주택을 쾌적한 주거로 회복시켰다.

또 골목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현주 씨는 문을 열고 살아도 불안하지 않은 ‘이웃’을 얻었다. 위협받는 아이들의 안전과 노인가구의 증가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은 사후 해결보다는 예방이 절실한 사안이다. 이때 가장 바람직한 사회 안전망은 이웃이다. 한옥과 더불어 만난 ‘이웃이 있는 삶’, 이보다 소중한 이득이 또 있을까. 역사문화자산을 잘 살려서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을 얻을 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에 기여하며, 골목 공동체를 회복하여 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한옥#도시형한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