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통신비밀, 자유와 함께 제한도 받아야 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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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지난달 13일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사이버 사찰’ 논란과 관련해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법질서를 혼란시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DB
지난달 13일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사이버 사찰’ 논란과 관련해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법질서를 혼란시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DB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A 씨는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검사가 증거 자료로 제출한 것들을 살펴보니 수사기관이 자신을 수년 동안 감청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이 A 씨를 감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었다. 이 법은 감청 기간을 2개월로 제한하고, 필요한 경우 감청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은 단지 2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고만 명시해 놓았다. 기간 상한이나 연장 횟수 제한 같은 것은 없었다.

A 씨는 이 같은 감청이 헌법에 위반된다면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감청은 몰래 행해지는 것이다. 당사자는 자신이 감청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장의 필요성 여부도 따질 수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한번 감청이 허가되면 수사기관은 계속 감청 기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었다. 감청 기간 동안 뚜렷한 범죄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더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아무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루어지는 감청이라 하더라도 기간 상한이나 연장 횟수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개인의 통신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아무 근거 없이 감청을 연장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은 이제 효력이 없어졌다.

우리 삶의 일부가 된 통신수단에 대해 상시적인 감시와 검열이 이뤄진다면 이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다.

통신수단인 우편이나 전신, 전화망 등은 국가의 중요한 시설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보급과 관리가 필요한 분야이다 보니 통신의 비밀은 국가에 의해 침해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경찰이 편지와 통신을 검열하고 집을 도청함으로써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이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일어나지 않았나.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사상의 자유까지 위협하는 이런 일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반대로 국민의 삶을 짓밟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헌법은 처음 제정될 때부터 지금까지 통신의 비밀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 일상에서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나누는 사적인 대화를 몰래 엿듣는 것을 금지한다. 통신수단을 이용해 나눈 대화가 개인적인 대화인지, 직장생활에 관한 것인지, 정치적인 대화인지 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통신수단으로, 누구와 얼마 동안 통신을 하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사소통이 위축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의 비밀을 보장할 자유 역시 제한 없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안전 보장을 위하여, 혹은 중대 범죄에 대처하기 위하여 통신 내용을 ‘감청’할 수 있다. 감청은 국가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합법적으로 당사자 동의 없이 통신의 내용을 알아내는 것으로 불법적인 ‘도청’과는 구별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살인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있는 등 매우 예외적인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감청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본 A 씨 사례와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감청이 남용되어 상시적인 감시가 된다면, 국민의 통신 비밀에 관한 자유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최근 검찰이 대통령과 관련된 풍문을 수사하기 위해 국내의 대표적인 메신저 서비스 회사의 협조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요동쳤다. 사람들이 국내 메신저 서비스에서 외국의 메신저 서비스로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떠났기 때문이다. 통신의 비밀 보호가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헌법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큰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사이버 사찰#카카오톡#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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