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힐링투어]한라산 둘레길서 환상의 피서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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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 ‘심연’을 숲의 정령과 걸으며 초록인간이 되다

한라산 둘레길 제1구간의 숲길을 걷는 도중엔 이런 건천을 여러 개 지나는데 당시 개울에는 이렇듯 1주 전 내린 빗물이 고여 있어 계곡은 평소 말라 있을 때와 분위기가 색달랐다. 한라산 둘레길=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한라산 둘레길 제1구간의 숲길을 걷는 도중엔 이런 건천을 여러 개 지나는데 당시 개울에는 이렇듯 1주 전 내린 빗물이 고여 있어 계곡은 평소 말라 있을 때와 분위기가 색달랐다. 한라산 둘레길=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선조들은 한여름을 어떻게 났을까. 자연과 더불어 거스름이 없음-무위(無爲)-을 지고의 덕으로 삼았던 만큼 지혜로 다스렸을 터. 그 핵심은 더위도 자연과 똑같이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음이다. 그건 두루 함께할 때 만사가 형통한다는 ‘소통’에 기반을 둔 생각으로 ‘피서(避暑)’라는 글자에 그대로 담겨 있다. 더위 ‘서’자를 보자. 태양(日)아래 사람(者)이 선 형국이다. 그러니 더위를 피하려면 해를 가려야 할 터. 허다한 나무와 숲이 그것이다. 폭포와 계곡은 그 숲의 일부다.

지난 주말 제주도는 수은주가 34도까지 오르는 폭염에 휩싸였다. 나는 게서 극심한 ‘서(暑)’를 ‘피(避)’해 한라산 중산간 해발 700m의 숲에 숨어들었다. 온통 초록의 숲은 길 외엔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원시림. 로저 디킨(1943∼2006·영국의 저술가 겸 환경운동가)이 자신의 책 ‘나무가 숲으로 가는 길’에 쓴 그대로 ‘나뭇잎이 우거진 심연의, 춤추는 그림자 속에 푹 잠기는 것 같은 느낌이 강렬하게 나를 압도했다’. 그는 숲을 이렇게 이해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다른 세계’로. 어린 소년이 아서 왕으로 성장-소설 ‘바위에 꽂힌 검(The Sword in the Stone)’-하고 마법의 힘에 의해 연인들 사이에 변화-‘한여름 밤의 꿈’(Midsummer Night's Dream)-가 일어나는 그런 신비한 공간으로서의 숲 말이다.

올여름 제주도를 찾았다면 한라산 원시림에서 정통 ‘피서’의 진수를 맛보자. 그러기엔 ‘한라산 둘레길’이 제격이다. 햇빛 한 점 쐬지 않고 시원한 숲 그늘 아래서 청아한 새들의 노랫소리를 감상하며 세상을 온통 초록으로 물들인 ‘숲의 정령’ 이끼와 소곤소곤 귀엣말을 나눌 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서귀포 칠십리 바다 풍광, 나폴리 온 듯 착각

한라산 중턱을 넘나드는 도로는 많다. 그래서 수시로 여길 찾는 내게도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는 풍광이 도중에 펼쳐지기도 한다. 그게 이번엔 지방도 1139호선(제주시∼서귀포시) 운행 중에 나타났다. 이날 나는 오전 9시 20분 제주시청을 출발해 한라산의 서쪽 중턱(해발 1100m)을 넘어 남북으로 달리는 이 길로 서귀포자연휴양림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목적지는 휴양림 근방의 한라산 둘레길 제1구간(일명 동백길)의 들머리인 무오법정사. 그런데 고갯마루를 넘어 한참을 내려가는데 해발 700m 거린사슴 전망대(서귀포자연휴양림 근방) 즈음에서 갑자기 펼쳐진 풍경에 감탄사를 내지르고 말았다. 범섬 문섬 등의 서귀포 칠십리 바다가 중산간 아래 숲과 서귀포시와 어울린 멋진 풍경에 놀란 것이다. 이 정도면 이탈리아 반도 서부 지중해(티레네 바다)의 나폴리 만에 있는 미항 나폴리의 풍광에 견줄 만했다.

좀 더 내려가자 왼편으로 ‘무오법정사’ 진입로가 보였다. 주차장에서 두리번거렸지만 절은 보이지 않았다. 둘레길 안내소와 매점, 안내판뿐이다. 절은 10분쯤 거리의 숲 속에 있는데 그나마도 터만 남은 상태. 도중에 만난 추모비가 그 사연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 절은 3·1독립만세운동보다 먼저 봉기한 400여 제주도민(스님과 농민 신자 등)의 대일 무장 항쟁터로 이후 일제에 의해 불살라졌다.
한라산 둘레길 제1구간의 숲길에서 발견한 이끼계곡. 늘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이렇듯 완벽한 이끼 왕국이 계곡에 형성될 수 없다.
한라산 둘레길 제1구간의 숲길에서 발견한 이끼계곡. 늘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이렇듯 완벽한 이끼 왕국이 계곡에 형성될 수 없다.

한라산 둘레길 김경훈 팀장(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제주지부)을 따라 들어선 제1구간의 해발 680m 산속. 길은 돈내코 계곡까지 9km를 오직 숲 속으로만 이어진다. 숲은 땡볕 내리쬐는 밖과 달리 우거진 수풀이 햇빛을 완벽히 차단해 짙은 녹음 아래 조용하고 시원했다. 길도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알맞은 오솔길. 바닥엔 야자수 줄기의 섬유질-선박용 로프 재료-로 땋아 격자 형태로 엮은 푹신한 매트가 줄곧 깔려 걷기도 편했다. 그런 길로 걷기를 한 시간쯤. 나는 숲 속 기온을 쟀다. 섭씨 26도. 이미 32도에 육박한 바깥-오후엔 34도 기록-과 6도가량 온도 차가 났다.

숲의 주인은 나무다. 새다. 거미며 날벌레 같은 곤충이다. 거기서 사람은 객(客)이다. 방문자다. 그러니 숲에선 조심해야 한다. 손님 대접을 받고 싶다면 더더욱. 멀리서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에겐 노랫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새들에겐 경계의 신호다. 사람은 숲의 평화를 깨는 불청객이다. 그러니 새소리 들리걸랑 손님으로의 처신에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즈음 길옆 풀섶에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노란 뱀이다. 더더욱 미안함이 들었다. 그들의 안식을 망가뜨린 듯해서다.

그 숲 안은 온통 초록의 세상이다. 초록이 아닌 게 거의 없다. 하얗거나 검은 바위, 이따금 보이는 까마귀 정도. 어찌나 푸른지 옷을 벗어 쥐어짜면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그런 초록의 세상에서도 동백의 초록 잎은 그 빛깔이 더더욱 도드라진다. 겉면에 기름 바른 듯 자르르 흐르는 윤기 덕분이다. 그런 동백이 이 숲엔 아주 많다. 그래서 ‘동백길’이란 이름도 붙었다. 그런 동백나무 중엔 어린 것도 많았다. 돌배기 고사리손 크기의 작고 앙증맞은 이파리 몇 개만 달랑 달고 여린 줄기로 길섶에 선 채 해바라기 중이었다. 그게 트레킹화 바닥에 밟힌다면…. 그러니 이 숲에선 발걸음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내 것이나 어린 동백이나 생명은 똑같이 귀중하다. 둘레길은 종종 계곡을 건넌다. 한라산의 계곡도 그 모습은 뭍과 같다. 파인 골을 채운 건 모두 돌무더기다. 다른 게 있다면 돌의 종류다. 계곡을 살피니 곳곳 웅덩이에 물도 고였다. 1주 전 내린 폭우의 잔해다. 한라산 계곡은 건천(乾川·늘 말라 있는 하천)이다. 그런 건천엔 비가 내릴 때만 물이 흐른다. 그래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계곡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순식간에 급류가 흘러내린다. 그럴 땐 건너선 안 된다. “되돌아가거나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물살이 약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김 팀장의 조언이다. 이런 계곡이 1코스엔 네 개나 있다.

온통 푸른 이끼계곡, 신비한 나라 속으로

숲은 신비의 공간이다. 온갖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곳이다. 그래서 부패가 일상화된 곳인데 그럼에도 세균 감염이나 악취가 없으니 신비롭다 할밖에. 그걸 김외정 박사(한국산림과학원 연구위원·자연치유관광포럼 이사)는 피톤치드로 설명한다. “숲은 거대한 부패의 온상입니다. 그런 만큼 나쁜 기운이 팽배하지요. 그걸 나무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병균과 곰팡이, 곤충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합니다. 그게 바로 나무 스스로 내뿜는 피톤치드입니다.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물질인 셈이지요. 그런데 이게 인간에게도 유익하다는 게 우리의 행운입니다. 어떤 것이든 항생물질은 도가 지나치면 해롭습니다. 다행히도 숲의 피톤치드는 그 농도가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에 못 미칩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미야자키 하야오(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감독)나 그의 작품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 심취한 이라면 더더욱 이 숲을 찾아야 한다. 그 작품에서 백미로 일컬어지는 ‘정령의 숲’ 무대와 똑같은 곳이 이 숲에 숨겨져 있어서다. 나는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한 ‘정령의 숲’ 무대인 야쿠시마(일본 규슈 남단 300km 거리의 작은 섬·가고시마 현)의 숲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은 온통 푸른 이끼로 뒤덮인 교실 두 개 크기의 돌무더기 계곡. 그런데 그 절반 크기에 모습이 흡사한 이끼계곡을 이 둘레길의 숲에서 찾았다. 숲의 정령이 살고 있을 것처럼 신비로운 모습을 한 온통 초록 이끼만의 세상을.

‘곤충기’를 쓴 파브르가 ‘식물기’를 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책에서도 그는 역시 식물이 지닌 경이로운 능력을 전해 준다. 숲이 죽음에서 생명을 가꿔 내는 희망의 공간임도 함께. 숲은 가장 연약하다고 믿었던 식물로부터 가장 강력한 힘과 인내를 배우는 치유의 공간이다. 그러니 이 숲을 좀 더 애틋하게 보듬고 싶다면 파브르의 식물기부터 읽고 찾아보자. 평생 잊지 못할 기막힌 체험이 될 터이다.

■Travel Info

한라산 둘레길: 해발 600∼800m 한라산 중산간의 원시림(국유)을 동그랗게 이어 주는 총연장 80km의 ‘자연을 만나는 환상숲길’. 현재 1, 2구간이 완성됐고 사려니숲길과 연결되는 3구간이 내년 개장 예정. 제1구간(14.2km)에는 무오법정사를 비롯해
화전민터, 표고재배장, 동백·편백군락, 시오름 등이 분포. 무오법정사까지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운행되는데 간격은 60∼80분. 도중 진출로도 두 곳 있지만 버스가 서지 않으니 콜택시를 이용한다. 숲길은 잘 닦였지만 돌무더기도 많으므로 바닥이 두꺼운 트레킹화가 좋다. 탐방객이 많지 않고 전화 통화가 두절되는 구간도 많은 만큼 혼자 걷기는 금물. 한라산 둘레길 안내센터 064-738-4280
맛집: ▽한마음돈가돈(사진): 깍둑썰기로 잘라 초벌구이해 내는 돼지 목살을 연탄불에 구워 멸치젓 장에 찍어 먹는다. 제주시 이도2동 76-11. 064-702-5570 ▽어진이네: 7∼10월은 제주도의 한치철. 서귀포시 보목포구에서 파도 몰아치는 검돌해안의 비경을 보면서 제대로 된 한치 물회를 맛볼 수 있는 토속 식당이다. 보목동 261, 064-732-7442

▼아쿠아플라넷 시워크 체험, 이보다 짜릿할 순 없다▼

섭지코지 한화 수족관 업그레이드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개관 1주년을 맞아 새로이 선보인 ’시워크’. 본보 조성하 기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관람수조의 수중에서 체험하고 있다. 한화호텔&리조트 제공.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개관 1주년을 맞아 새로이 선보인 ’시워크’. 본보 조성하 기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관람수조의 수중에서 체험하고 있다. 한화호텔&리조트 제공.

제주바다의 환상적인 산호수중을 수족관의 관람수조 안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면….

지난해 이맘때 제주도 섭지코지(서귀포시)에 문을 연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수족관)를 취재하던 중 들었던 이 뜬금없는 생각이 1년 만인 지난 주말 드디어 실현됐다. 수족관 측이 스쿠버다이빙 강사의 일대일 지도와 안내로 진행하는 시워크(Sea Walk·수중 걷기) 프로그램의 최초 체험자로 자원, 동양 최대의 제주바다 관람수조(너비 22m, 깊이 9m) 안에서 매처럼 긴 꼬리를 가진 매가오리, 대형 거북이와 함께 15분간의 수중 유영과 걷기를 한 것이다.

관람수조에서의 다이빙은 프로다이버만의 특권. 높은 몸값의 귀한 물고기가 손상될 우려가 큰 탓이다. 그런데 그걸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관람객에게 개방했다. 전 세계 도처에 허다한 수족관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획기적인 이벤트로 어류 관리에 대한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돌고래와 대화’도 같은 맥락이다. 생태 풀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관리 중인 큰돌고래(6마리)와 만남을 통해 자연과 소통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다. 원래는 자폐아 치료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것인데 이걸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VIP투어에 포함시켜 체험의 장을 넓힌 것. 더불어 90여 명의 전문 인력이 배속된 해양생물연구소도 운영 중이다. 최근엔 해양생물 메디컬센터도 개설해 구조 활동과 연계한 의료지원체제까지 완벽히 갖췄다.

1년 만에 찾은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이렇듯 업그레이드돼 있었다. 그간 다녀간 이는 100만 명. 이곳의 얼굴 격인 고래상어를 고향인 제주바다로 돌려보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인어 모습을 한 서양미녀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선수의 수중댄스, 제주해녀의 수중물질(공연)에 시워크 다이버의 등장으로 볼거리는 더 풍성해졌다.

푸드코트의 변신도 주목된다. 간판 메뉴는 돈베고기(돼지편육)와 전복해물찌개, 은갈치조림, 묵은지, 전으로 구성된 ‘제주오합(五合·20인 이상 단체 주문 메뉴)’인데 하나씩도 낸다. 064-780-0900, www.aquaplaner.co.kr/jeju

서귀포(제주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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