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봄을 기다리는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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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
오늘 2월 2일은 북아메리카의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봄이 일찍 올 것인지를 예측하는 날이죠. 이날 해가 나서 마멋(다람쥣과 동물의 일종으로 그라운드호그라고도 부름)이 자기 그림자를 보게 되면 겨울이 6주 길어진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미국 날씨 프로그램에서 이날 마멋을 보는 수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날은 1993년 나온 영화 ‘사랑의 블랙홀’(원제 ‘그라운드호그 데이’) 덕에 아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에 마멋을 취재하러 간 기상캐스터가 눈 때문에 마을에 갇히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똑같은 날이 다시 시작됩니다. 한 밤을 더 자도, 또 그 다음에도, 똑같은 날이 반복됩니다.

이날과 이 영화는 제게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주인공인 필은 매번 같은 날이 반복되어 지겨워지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합니다. 초보자로 시작하지만 매일 반복 연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 자기가 짝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솜씨를 뽐낼 정도가 되죠. 그가 열심히 연습하는 곡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입니다. 이 곡은 이 영화와 우리말 제목이 비슷한 1980년 영화 ‘사랑의 은하수’(원제 ‘Somewhere in Time’)에도 인상 깊게 사용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벌써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겠죠. 다가오는 주말부터 긴 연휴가 시작됩니다. 명절에는 집안에서 바빠지는 누군가의 손길을 도와주는 일이 우선이겠지만,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봄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앞에 언급한 라흐마니노프의 곡도 좋지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느리고 명상적인 3악장이나, 이 교향곡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구노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 중 봉헌송 부분도 봄을 기다리는 듯한 깊은 명상을 전해줍니다. 약간 성급하지만 슈만 교향곡 1번 ‘봄’이나 멘델스존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에 나오는 ‘봄노래’처럼 봄을 직접 그려내고 예찬한 곡을 들어보아도 물론 좋겠습니다.

gustav@donga.com
#그라운드호그 데이#라흐마니노프#파가니니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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