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실제 역사속 헨젤과 그레텔은 살인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빈 국립오페라극장이 올해 공연한 훔퍼딩크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빈 국립오페라극장이 올해 공연한 훔퍼딩크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훔퍼딩크
해외 공연물을 소개하는 TV 채널에서 훔퍼딩크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보았습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이 이번 시즌 공연한 따끈따끈한 영상입니다. 연말에 자주 공연되는 가족용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에 자주 방영될 것 같습니다.

이 오페라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해 빵 부스러기를 길에 떨어뜨리는 에피소드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버리는 ‘나쁜 계모’도 없습니다. 제 발로 숲에 간 아이들이 밤이 늦어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라 체네렌톨라)에 유리구두도, 계모도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출판업이 활발하지 않고 ‘표준 버전’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았던 18∼19세기에는 유명한 동화나 소설도 다양한 판본으로 소화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화의 이면과 관련된 충격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1647년 한스(애칭은 헨젤)와 그레텔 메츨러라는 오누이가 숲에 사는 여성 제빵사 카타리나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스는 예전에 맛있는 쿠키 제조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카타리나에게 청혼한 일이 있었고, 거절당하자 카타리나를 마녀로 고발했습니다. 무죄로 풀려난 카타리나는 숲으로 숨었습니다. 그를 메츨러 오누이가 찾아가 살해한 것입니다.

20세기 초 독일의 교사였던 한스 트락슬러(필명 게오르크 오세크)가 17세기 문헌을 치밀하게 조사해 이 같은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무서운 살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는 그저 ‘한스와 그레텔이 마녀를 죽인 사건’으로 알려졌고, 구전 끝에 동화로 각색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달 19∼27일에는 경기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이 공연됩니다. 단지 동화를 기반으로 한 ‘가족용 오페라’로만 볼 수 없는, 더없이 정밀하고 화려한 관현악을 갖춘 명작 오페라입니다. 공연을 보시는 관객들은 작품 이면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진실도 머리에 떠올려 보고, 트락슬러의 분석처럼 가엾게 희생됐을지 모를 ‘마녀’ 카타리나에게도 한번쯤 동정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훔퍼딩크#헨젤과 그레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