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동요 ‘악어떼’ 닮은 알캉 ‘이솝의 향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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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샤를발랑탱 알캉. 피아니스트 한지호.
작곡가 샤를발랑탱 알캉. 피아니스트 한지호.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작곡가 샤를발랑탱 알캉(1813∼1888)의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 ‘이솝의 향연’을 들으며 동요 ‘악어떼’(이요섭 작사 작곡)를 떠올렸습니다. 주제와 25개의 변주로 되어 있는데, 주제 리듬이 ‘♪♪ ♪♪/♬♬♬♬ ♪’로 ‘악어떼’를 연상시킬 뿐 아니라 그 화음도 단조의 ‘으뜸화음-으뜸화음-딸림화음-으뜸화음’을 반복해 흡사합니다. 주제 마지막 부분에 ‘악어떼!’ 하는 외침이 들릴 것 같습니다.

주제는 동요를 연상시킬 만큼 단순하지만 25개의 변주는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활짝 편 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왼손, 같은 음표를 믿을 수 없는 빠르기로 두들겨대는 오른손…. 변주마다 피아니스트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알캉이 활약한 19세기 중후반은 경제력을 손에 쥐게 된 시민층이 연주회장과 사교계 살롱을 가득 채운 시대입니다. 연주가들을 고용했던 귀족과 달리 이들은 숭배하는 대상을 따라 연주회장을 찾아갔고, 연주자들은 남다른 표현력과 기술로도 무장해야 했습니다. 바이올린의 파가니니, 피아노의 리스트처럼 알캉 역시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 쇼팽의 연인이었던 작가 조르주 상드 등 영웅적 정신으로 무장한 예술가들이 그의 친구였습니다.

이달 6일 경기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한지호 씨의 독주회에서 ‘이솝의 향연’을 들었습니다. 어려운 악구들을 손에 쥐고 놀듯 하는 한 씨의 기교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통적 악기 교수법에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효율성, 과학이 더해진 이 시대는 19세기 명인들이 ‘자기만’ 연주할 수 있도록 쓴 곡도 어렵잖게 넘어서는 명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씨는 차세대 음악명인들의 집결지로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인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2014년 우승자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인 30일은 알캉의 202회 생일이군요. 한지호 씨가 연주하는 ‘이솝의 향연’은 12월 27일 경기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독주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쇼팽 ‘24개의 전주곡’도 연주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동요 악어떼#알캉#한지호#이솝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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