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영원히 바위 굴리는 ‘시지프’가 행복할 수 있는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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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시지프 신화(알베르 카뮈·책세상·2012년) 》

세상에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다음 두 가지는 명백히 진리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 동시에 어떤 생물도 죽는 것을 싫어한다. 파리 한 마리조차도 누군가 파리채를 들고 쫓아오면 죽기 살기로 도망간다.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모든 불행이 여기서 출발한다고 봤다. 삶은 더없이 소중하면서도 유한하다. 그중 단 1초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세밑 떡국이 반갑지 않고, 해질녘 풍경에도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더 큰 불행은 인간이 이런 삶의 특성을 잊고 살 때 찾아온다. 카뮈에 따르면 죽음이라는 운명을 직시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만 바라보고 산다. “내일은 분명” “언젠가는 나도”라는 말로 오늘의 불행을 참아내지만, 이는 도전정신을 가장한 직무 유기요, 자기기만이다. 혹자의 표현처럼 미래란 ‘죽음에 이르는 병’일 뿐이다.

카뮈가 그리스 신화 속의 반항아 ‘시지프(시시포스)’를 끌어오는 것은 여기에서부터다. 삶을 너무나 소중히 여겼던 그는 죽음의 신을 속여 장수를 누렸다. 하지만 결국 신들의 노여움을 사 높은 산의 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바위는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시지프는 끝없이 바위를 굴린다.

그럼에도 카뮈는 시지프의 삶이 현대인의 반복 노동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봤다. 그의 형벌은 스스로 택한 반항의 결과물이다. 그는 영원히 고통받을지언정, 한때나마 지상에서의 행복에 탐닉할 수 있었다. 바위가 다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시지프가 “기뻐하면서 내려올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소소한 일탈 한 가지를 꾸며 보는 것도 괜찮겠다. 연초부터 긴 휴가를 다녀오는 것처럼 말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봐야 한다”는 말로 끝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시지프 신화#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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